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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아, 야옹아 ~06

1차 창작 BL







은호는 아직도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가장 오래고 먼, 최초의 기억이었다.

우렁찬 울음이 숲을 흔들었다. 날카롭던 포효는 숲을, 땅을, 또 하늘과 세상을 온통 울렸다. 너른 공터 주변을 빙 에워싸고 있던 구경꾼들이 모두 선 채로 얼어붙었다. 섣불리 입을 떼는 이도 없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공터의 정중앙을 바라보았다. 너른 공터의 한중간에서 범 두 마리가 이를 드러내고 싸우고 있었다. 태양처럼 빛나던 황금빛의 범, 그리고 그보다 한참이나 체구가 컸던 짙은 갈색 털의 범이었다. 털과 체구처럼 두 범의 눈동자 색도 모두 달랐다. 황금빛 범의 금색 눈동자가 희번뜩 안광(眼光)을 발했다. 갈색 범의 옥색 눈결이 황금빛 범을 향해 사납게 울었다. 하얗게 드러낸 송곳니처럼 두 범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싸움은 오래지 않아 승패가 갈렸다. 황금빛 범이 날렵하게 뛰어 올랐다. 


곳곳에서 신음이 터지고, 구경하던 늙은 노파가 입을 틀어막으며 주저앉았다. 모두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황금빛 범은 망설이지 않았다. 송곳니가 갈빛 범의 덜미를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턱을 흔들며 범은 상대의 마지막 숨결조차 살해했다. 짧은 비명도 없었다. 갈빛 범의 눈에서 빠르게 생명이 꺼졌다. 이윽고 허공을 향해 발톱을 세웠던 앞발이 무기력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은호는 그곳에 있었다. 갈빛 범의 눈을 보았을 것이다. 빛이 꺼져가던 순간에도 옥색 눈동자는 명확히 자신을 바라보았다. 은호는 그 모든 순간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한 순간도 끔벅이지 않던 옥색 눈에서 숨이 빠져나가던 순간을, 마침내 그 빛을 완벽히 상실하는 순간을 은호는 지금껏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 


그러나 차마 그 이름을 부르며 안겨들지 못 했다. 그 결투에 끼일 자격이 있을 리 없었다. 아비의 숨이 꺼지던 순간을 지켜보는 것이 어린 은호가 할 수 있던 유일한 일이었다. 이것이 삶의 순리다. 이치다. 하지만 괴로웠다. 눈을 감고 싶었다. 생명이 꺼져 나간 그 눈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은호는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곁에 서 있던 어머니가 은호의 작은 머리를 단단히 잡았다. 감정이 없는 목소리가 담담히 속삭였다. 아들아.



「똑똑히 보렴. 네 아버지가 어떻게 왕좌에서 굴러 떨어졌는지, 누가 네 아버지를 물어 죽였는지.」

「……」

「약해서 그렇단다.」



힘이 없어서 죽은 것이라 했다. 제왕으로서의 힘이 제 이복동생보다 부족했기 때문에 그 동생에게 물려 죽은 것이라고 어머니는 말했었다. 붉은 피로 범벅이 된 입가를 닦지도 않은 채로 황금빛 범은 크게 포효했다. 스스로 물어죽인 이복형의 사체 앞에서 아우는 천지를 찢을 듯이 진동시키며 몇 번이고 울었다. 그 소리가 마치 사람의 곡 같았다. 슬프고 애잔한 곡이었다. 

정작 은호는 울 수 없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던 어머니가 자그마한 아들의 갈색 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유리 같은 천지의 천장에서 후드득 물이 떨어져 내렸다. 천지의 굴 안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곧 모두 빼앗길 거야. 우리가 누렸던 것들, 우리가 앉아 있던 자리, 마땅히 우리의 것이었던 즐거움과 찬사들. 남은 자리엔 이제 멸시와 조롱만이 남아 있겠지. 성호가 되어도 너는 그저 잡종일 뿐이야. 알겠니? 네 아버지는 그 더러운 피 때문에 죽은 거야. 순혈에게 힘이 밀려서, 잡종이라서. 인간의 자식이라서.」

「……」

「오늘을 똑똑히 기억하렴. 저 눈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된단다. 네가 살아갈 이유고 운명이야. 알겠니, 은호야. 왜냐면 언젠가는 너도…」



어머니가 소리를 죽였다. 재차 물었다. 알겠니? 은호는 차마 고개를 끄덕이지 못 했다. 커다란 달맞이꽃을 머리에 꽂은 곱고 아리따운 여인이 황금빛 범에게로 달려 나와 지친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늙은 장로가 관을 들고 범의 앞에 나섰다. 범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관을 씌우자, 장내는 일순 환호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소리쳤다. 새 족장이다, 순혈의 족장님이시다! 그때에도 은호는 터 한쪽에 축 늘어져 있던 제 아비의 시신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말대로 했다. 하나하나 눈에 새겨 넣었다. 


영혼이 빠져 나간 옥색 눈동자, 비에 섞여 흙바닥을 붉게 적시던 선혈과 미동 없이 늘어진 거대한 몸체...

잊지 않기 위해 은호는 똑똑히 기억했다. 눈에, 그 가슴에 새겨 넣었다. 눈을 감으면 언제라도 떠올릴 수 있도록. 설사 마음이 약해지는 때가 오더라도 태연해질 수 있도록. 무엇이라도 증오하고 미워할 수 있도록.



「네가 빼앗긴 자리야.」



어머니가 말했다. 



「찾으렴.」



때문에 은호는 묻지 못 했다. 어째서 가슴이 아픈 것인지, 어째서 자꾸 눈가가 시큰거리는 것인지. 가슴을 짓누르는 이 괴로움과 상실감이 무엇인지 은호는 영영 물을 수 없었다.
그해, 천지 호족들의 족장이 바뀌었다. 호연이 자신의 이복 형이었던 주호(周昊)를 물어죽이고 족장이 되었고, 보수파 장로들은 다시 순혈의 시대가 열렸노라며 환호하였다. 1945년, 일제가 항복하고 38선이 그어지던 그 무렵의 이야기다.










주은호를 데리러 온 것은 마이바흐가 아니었다. 효경이 입을 떡 열며 우물거렸다. 


대박.



저편에서 뚜껑 달린 파란 차체가 은은하게 빛을 냈다. 벤츠의 로고가 큼직하게 박힌 차체 곁에서 둘을 알아본 한정민이 안경 끝을 밀어올리곤 꾸벅 인사를 했다. 단정하게 정돈된 갈색머리만큼이나 사람 좋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옷차림이 평소와 달랐다. 늘 주름 하나 없던 수트 대신 정민은 오늘 편안한 섬머 셔츠에 복숭아뼈가 얼핏 보이는 치노 팬츠를 걸쳐 입었다. 신발조차 로퍼였다.

실장님도 저런 옷을 입을 줄 아는구나. 효경은 적잖이 감탄했다. 옷장에는 같은 양복, 같은 수트만 수십 벌씩 걸려 있을 줄 알았는데. 잠을 잘 때에도 어쩐지 정장을 입고 잘 것만 같은 남자였었다. 주섬주섬 소회를 삼키고 있으려니 앞서 걸어간 은호가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표정 없는 흑색 눈이 담담히 효경을 돌아보며 말했다.



“타.”



상대가 해이찬이었다면 타박을 줘도 골백번은 줬을 것이다. 내가 니 여친이라도 되냐? 라는 소리를 농담으로도 하지 않았던 건 순전히 주은호였기 때문이었다. 한 쪽으로 무심히 비켜서 있는 모습조차 주은호라서 기깔이 남달랐다. 이 인간은 숨만 쉬어도 왜 혼자 스크린 속에 들어가 있는 걸까. 하여튼 잘 생기고 볼 일이야. 생각하며 효경은 카브리올레의 뒷좌석에 올랐다. 은호가 효경을 따라 뒷좌석에 탔고, 마지막으로 정민이 앞좌석에서 차문을 닫았다. 효경이 의아한 듯 눈을 열었다. 오늘은 운전기사가 없었다.



“실장님이 운전하시는 건 처음 봐요.”

“하하, 그런가요? 가끔 몰기는 하는데.”



효경의 말에 정민이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은호를 데리러 올 때마다 정민은 항상 마이바흐와 함께였지만 그때마다 늘 운전기사가 따로 있었다. 벨트를 당겨 채우면서 정민은 효경을 룸미러 너머로 슥 쳐다보았다. 안경 너머에 걸린 웃음이 어쩐지 조금 장난스러웠다.



“서툴러도 잘 부탁드립니다, 손님. 어디까지 모셔드릴까요?”



효경이 프 웃었다. 아마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한 농담이었을 것이다. 웃음을 삼키며 효경은 짧게 대답했다. 신촌으로 가주세요. 정민이 기어를 풀며 옅게 웃었다. 차가 천천히 출발했다.


어색해 죽을 것이라던 효경의 예상과 달리 분위기는 썩 나쁘지 않았다. 


아마 정민의 덕이었을 것이다. 은호는 애초부터 차창을 쳐다보고 있었고, 정민이 운전을 하면서 효경에게 틈틈이 말을 걸었다. 점심은 맛있으셨느냐는 말에 효경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정민은 메뉴에 대해 물으며 담담히 대화를 이어 나갔다. 줄곧 존대였다.

정민은 처음부터 그랬다. 첫인상은 제법 차갑고 어려웠던 걸로 효경은 기억했다. 마이바흐만큼이나 딱딱한 수트 차림에 안경을 걸쳐 쓴 얼굴은 인사를 하는 것조차 쭈뼛하게 만드는 위압감이 있었다. 그러나 도련님의 친구분들이시느냐며 아는 척을 해온 정민이 활짝 웃었을 때 효경은 그 선명한 온도차에 다소 놀랐다. 웃지 않을 때의 얼굴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사람이 좋아도 너무 좋은 얼굴은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이찬과 자신을 깍듯하게 대했다. 도련님이 학창시절을 러시아에서 보내 한국에 친구가 없노라 부연하며 정민은 자신보다 열 살은 어릴 이찬과 효경에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인사를 받는 순간 효경은 펄쩍 뛰었었다. 이찬이야 워낙 미친 친화력이라 잘 받아쳤다지만 효경은 어쩐지 정민의 그런 태도가 어려웠다.


연상은 늘 어렵다. 게다가 그 어려운 연상에게 깍듯하고 공손한 대접을 받으면 효경은 어쩐지 마음이 불안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주은호보다 열 배쯤 더 어려운 남자였다. 


때문에 드물게 당황했었다. 허둥거리면서 인사를 어떻게 해야할지 갈팡질팡하던 효경을 보면서 은호는 여전히 별 반응이 없었고, 이찬은 배를 잡고 웃었었다. 이 녀석이 외동이라 그래요, 연상 대할 줄을 모른다니까? 이찬의 부연에 정민은 잠시 의아한 얼굴을 했었나. 그러나 이내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대하십시오. 저도 동생이 없거든요.


사람이 너무 좋아. 


룸미러 너머를 흘긋 바라보면서 효경은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정민은 늘 웃는다. 모시는 도련님이 하필이면 웃음 옵션을 날 때부터 탑재하지 못한 주은호라서 그 웃는 얼굴은 더 극적으로 드러났다. 잘 웃고, 어린 자신에게도 깍듯하다. 처음에야 어려웠지만 이제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렇게 운전을 하면서 계속 말을 걸어주는 것도 저 어른 나름의 배려라는 것을 효경은 잘 알고 있었다.


뻘쭘하고 껄끄러울까봐 그러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실내는 적당히 시원했고, 벤츠의 승차감도 좋았다. 차만 덜 막히면 더 좋을 텐데. 생각을 되씹으며 효경은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동교동 로터리 앞에서만 벌써 십여분 째 정체중이었다. 차는 많고 신호는 길다. 시원하게 달리질 못하니 어쩐지 없던 조바심이 났다. 그보다는 그 녀석이 떠오른 탓이었다. 야옹이.



“사고치는 건 아니겠지.”



효경이 저도 모르게 툭 중얼거렸다. 창 너머를 바라보던 은호의 눈길이 스르륵 효경을 돌아보았다. 효경은 정면 창 너머를 내다보고 있었다. 늦으려나. 여기서부터는 사실 천천히 걸어가도 된다. 내릴까? 아니, 아냐. 오늘은 걸으면 죽어. 분명히 죽어. 되씹던 차에 효경이 낯익은 위화감을 느꼈다. 또 그거다. 또 오른쪽 뺨이 당겨. 생각을 따라 긴 눈꼬리가 스르르 오른쪽을 쳐다보았다.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역시 또 주은호였다. 기가 차면서도 딱히 처음도 아니어서 효경은 익숙하게 받아쳤다. 왜? 은호가 입버릇처럼 또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냥. 그리고 효경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웬 일로 ‘그냥’에서 끝나지 않았다.



“어디야.”



하지만 여전히 주어는 없었다. 긴 눈꼬리가 황당한 듯 일그러졌다.



“뭐가 밑도 끝도 없이 어디야. 주으노, 너 제발 주어 좀 붙이고 말하면 안 되냐? 나랑 말하는 거 귀찮아?”

“아니.”

“근데.”

“집 어디냐고.”

“신촌이라니까?”

“신촌 어디.”



이상한 대화였다. 왜 이 인간이랑 대화를 하면 덩달아 나까지 말이 짧아지는 것일까. 답답해 죽을 것 같다. 성질을 부리는 대신 효경도 짧게 받아쳤다. 학교 근처. 은호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저 자식은 왜 고갯짓을 해도 저렇게 화보 같지. 생각하니 효경은 조금 약이 올랐다. 좋겠다, 잘 생긴 새끼야. 그런 소리를 하는 대신 효경은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했다. 노고산, 우리 학교 뒤에 그 산.



“노고산?”

“어, 노고산.”



아. 은호가 고개를 느리게 끄덕끄덕 했다. K대생 치고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OT 때 한 번 배우고 까먹어버리는 교가에도 나오고, 주변 골목마다 전부 노고산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까. 지금은 산 정상의 끄트머리만 겨우 남아 있지만 예전에는 그 근방이 전부 산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에 지하철이라는 걸 처음 건설한 대통령의 딸이 입학하면서부터 풍경이 바뀌었다. 3대째 마포 토박이라고 하는 수퍼 아줌마의 수다를 빌리자면, 이젠 옛날 모습을 전혀 찾을 수가 없단다. 신촌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던 산에는 이제 나무가 아닌 원룸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있다. 산을 깎아 만든 탓인지 가파른 계단이나 미궁이 따로 없을만큼 꼬여 있는 골목길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되지만. 서울은 효경에게 아직도 너무 복잡했다. 왜 이 동네엔 똑바로 뻗은 길이 없는지.

그래도 아직까지 산의 흔적은 남아 있었다. 예전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아진 것일 테지만 산은 여전히 산이었다. 학교 뒷문에서 시작돼 효경의 자취방 창문 앞에서 끝나는 산은 아직도 숲이 꽤 깊었다. 치기나 술김에 멋모르고 산을 오른 학생들은 십중팔구 길을 잃었다. 듣자하니 예전에 유영철이 여기에 시체 몇 구를 묻었다고 했나. 그 밑에 있는 목욕탕에서 피 묻은 몸을 닦았다며, 선배들은 신입생이 된 효경에게 잔뜩 겁을 줬다. 그 탓에 효경은 아직도 창문은 자주 열어도 숲 쪽을 똑바로 들여다보질 못 했다. 


이 이야기는 곧 죽어도 해이찬한테는 비밀이었다. 분명히 놀릴 테니까.


빽빽하게 어깨를 맞댄 숲은 깊고 어두웠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아닌 낯선 세계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그 어둠이 효경은 참 싫었다. 정말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숲이었다. 아니면 호랑이.

그러고 보니 그 ‘호랑이’는 잘 놀고 있을까?



“고양이 많지, 거기.”



혼자 심심한 거 아닐까. 아니야, 사고를 쳤을 것 같아. 애초에 내 말을 잘 듣는 녀석이 아니었어. 헉, 설마. 찬장에 숨긴 스팸 뜯어 먹고 있는 건 아니겠지? 줄줄이 이어지던 생각을 잘라낸 건 오른편에서 들려온 낮은 목소리였다. 은호였다. 효경이 일순 의아한 얼굴을 했다. 고양이? 뜬금없었다. 그러고 보니 희한하게 요즘 주은호랑 자꾸 고양이 얘기를 한다. 생각하며 효경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많아, 엄청.



“동네가 무슨 고양이 밭이라니까. 발정기만 되면 밖에서 계속 애기 울음소리 들리고.”

“고양이 싫어한다면서.”

“어? 아, 어. 되게 싫어. 아니, 좀… 무섭잖아. 그 눈.”

“근데 ‘야옹이’는 키우고.”



어? 효경이 눈을 둥그렇게 열었다. 그러게. 이상하다. 분명 고양이를 싫어했었다. 아니, 싫다기보다 무서워했다. 대부분의 혐오가 그렇듯이 효경이 고양이를 싫어하게 된 데에도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고양이를 주워다 키울 줄이야. 아무리 술김이기는 했어도.

효경이 웃으며 말을 흐렸다. 그냥, 뭐, 어쩌다보니. 솔직히 그랬다. 키우고 싶어 키운 게 아니라 그 녀석이 나타났을 뿐이다. 그게 호랑이였을 줄은, 그보다 ‘사람’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지만. 소리 없이 말들을 죽이면서 효경은 잠깐 눈 끝을 찡그렸다. 그때에도 은호는 효경을 뚫어져라 빤히 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정민이 말 한 마디가 없다는 사실을 효경은 미처 눈치 채지 못 했다.



“그럼 고양이는 왜 싫은데.”



은호가 물었다. 요즘 주은호는 정말로 이상하다. 왜 이렇게 나한테 관심이 많아? 생각에 눈을 짧게 흘겨보다 효경은 이내 말았다. 오늘따라 주은호가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 에어컨이 시원해서 그런가. 아니면 한실장님이랑 대화하다 마음이 편해져서? 생각해보다 효경은 잠잠히 말을 이었다. 해이찬한테도 해본 적이 없던 얘기였다.



“엄청 큰 야옹이한테 먹힐 뻔 했어.”

“엄청 큰 야옹이가 뭔데.”

“호랑이.”

“……”

“동물원에서 구경하고 있는데 우리 안에 있던 호랑이가 갑자기 나한테 달려들었거든.”



그래, 호랑이였다. 그때가 언제였더라. 아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직후였을 것이다. 어릴 때 거의 키워주다시피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효경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일시적인 실어증이었다고 엄마는 회고 했었다. 기껏 다시 같이 살게 된 외아들이 입을 꾹 닫아버렸으니 아빠와 엄마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상담을 맡았던 의사는 가족들이 자주 어울려 나들이를 하라고 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당장은 돈을 버는 게 우선이라 믿었던 부부의 패턴은 그때부터 바뀌었다. 주말이면 효경의 손을 잡고 어디든지 갔다. 

산, 바다, 박물관, 전시회, 놀이공원, 그리고 동물원. 날이 풀린 직후여서 동물원에는 사람이 많았다. 인파에 떠밀려 아빠는 효경의 손을 놓쳤고, 아빠엄마가 자신을 찾는 것도 모르는 채로 효경은 호랑이 우리 앞에 웅크려 앉았다. 


그 후부터의 기억은 어쩐지 좀 조각나 있었다. 야옹아, 라고 호랑이를 불렀었고, 눈이 마주쳤고, 그러다 얌전히 누워 있던 호랑이가 갑자기 이쪽으로 달려오더니… 


모르겠다. 그래도 효경은 그 눈만큼은 오래도록 잊지 못 했다. 핏발이 잔뜩 선 채로 뚫을 듯 매섭게 노려보던 밝은 옥색의 눈.



“진짜로 무서웠는데.”



효경이 흐 웃으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정민도, 은호도 말이 없었다. 오래도록 서행을 반복하던 차가 교차로를 넘으며 속도를 붙였다. 차가 이제는 좀 풀리는 모양이었다. 아, 이제 금방 도착하겠다. 휘 창 너머를 둘러보며 효경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은호가 주춤 내밀었던 오른손을 황급히 숨겼다. 효경이 은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왜? 은호가 잠자코 고개를 저으며 또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냥.


차가 다시 한 번 교차로의 붉은 신호에 걸렸다. 


아, 여기도 신호 완전 긴데. 효경의 표정이 다시 한 번 솔직하게 일그러졌다. 이 야옹이는 밥이나 제대로 챙겨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참치 캔도 제 손으로 못 따는 바본데. 분명히 스팸도 꺼내놓고 따먹진 못 하고 쫄쫄 굶고 있을 거야. 나 없으면 밥이나 먹겠어?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스르륵 웃음이 걸렸었나. 은호가 다시 입을 연 건 그때였다.



“효경아.”



주은호는 늘 이름을 부른다. 무뚝뚝하고 웃을 줄도 모르는 녀석이라지만 늘 그랬다. 그 투가 싫지 않아서 효경은 항상 은호에겐 이찬보다 좀 더 유들유들 했다. 은호를 돌아보면서 효경이 짧게 대답했다. 응? 또 눈이 마주쳤다. 차는 선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전부터 궁금했던 게 하나 있는데.”

“? 뭔데.”

“내가 지금 누굴 찾고 있어서.”

“뜬금없이 또 누굴 찾…”



버릇처럼 흘러나오던 말꼬리가 우물우물 흐려졌다. 주은호 때문이었다. 그보다는 정확히 제 어깨를 스르륵 감아오던 팔 때문이었다. 뭐야. 눈꼬리가 긴 눈이 옅게 움찔했다. 스킨십이 많은 건 해이찬이지 주은호가 아니다. 왜 안 하던 짓이냐고 한 마디 해줄 생각이었다. 너 요새 진짜 이상해. 그 소리라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효경은 말머리의 한 글자도 제대로 꺼내놓지 못 했다. 혀가 움직이질 않아. 손끝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마치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 멀쩡한 건 열려있는 눈뿐이었다. 천천히 흔들리는 눈동자를 주은호가 뚫을 듯이 쳐다보았다. 그 얼굴이 어쩐지 먼 꿈처럼 느껴졌다.


주은호가 천천히, 웃었다.


웃으니까 열 배쯤은 더 잘 생겼네. 내 주변엔 왜 이렇게 잘 생긴 얼굴이 많을까... 연애가 안 되는 그 탓이다. 나도 어디 가서 빠지는 얼굴이 아닌데 내 주변에 잘난 얼굴이 너무 많아서.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던가. 모르겠다. 머리가 무거웠다. 나른하고 몽롱했다. 웃으며 주은호가 남아있던 손으로 효경의 뺨을 가만히 움켜잡았다. 마르고 긴 손가락들이 얇은 피부 위를 미끄러질 때 효경은 오스스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여전히 몸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 채로 주은호가 재차 이름을 불렀다.



“효경아.”



뺨을 타고 귀 쪽으로 돌아간 맵시 좋은 손가락들이 효경의 머리칼을 가만히 쓸어 넘겼다. 어깨를 안고 있던 팔이 마른 등을 타고 천천히 미끄러지며 효경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효경아. 연거푸 부르면서 은호가 안고 있던 마른 허리를 제 쪽으로 스륵 끌어 당겼다. 단숨에 간격이 좁아졌다. 귓가를 살며시 문지르면서 은호가 드러난 목덜미에 제 얼굴을 묻었다. 낯선 촉각에 효경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상해. 이상하잖아, 이런 거. 하지만 이성의 조각은 그 이상 꿰어 맞춰지지 않았다. 마치 꿈이라도 한바탕 꾸고 있는 것처럼.


은호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목덜미의 얇은 피부 위에서 낮은 숨이 깊게 호흡한다. 제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채로 은호는 다시 효경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효경의 눈동자가 크게 떨었다. 효경이 기억하고 있던 흑색 눈동자가 아니었다. 그 눈은… 그러니까, 그건 마치…



“오늘도 냄새 좋네.”



낮은 목소리가 얇은 피부 밑을 깊게 후볐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숨을 못 쉬겠어. 하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흔들리는 흑발머리칼의 움직임을 따라 셔츠는 좀 더 깊게 흘러 내렸다. 드러난 목선을 따라 은호는 입술을 밀어 올렸다. 저음이 눌린 호흡처럼 속삭였다. 효경아.



“내가 찾는 사람이 꼭, 이런 단내가 나는데.”

“……”

“이 냄새가 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려줄까.”



알게 뭐야. 간지러워. 어지러워. 뜨거워. 아니, 그보다… 넌 누구야. 조금이라도 몸이 자유로웠다면 효경은 진작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벗어났을 것이다. 운동바보 해이찬이나 체육대회만 되면 전교를 날아다닌다는 주은호만큼은 아니었어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밀릴 입장도 아니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겨우 숨을 참는 것이 고작이었다. 입술이 피부 위를 미끄러질 때마다 효경은 버릇처럼 흡 숨을 들이켰다. 정민은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직 신호는 바뀌지 않았다. 목선을 따라 체온은 집요하게 피부 위를 미끄러졌다. 그러다 스르륵 올라온 입술이 가볍게 귓불을 물었다. 눈이 마주친 주은호가 다시 한 번 천천히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달콤하고 아찔했다. 그 채로 은호가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사냥감.”


사냥이라니. 말의 의미를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알고 싶은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저 어지러웠다. 까닭없이 휘청거리며 효경은 끝도 없이 아득히 가라앉았다. 허리를 움켜 안은 손에 울컥 힘이 실리는가 싶었을 때 목덜미에서 우득, 잇소리가 울렸다. 갈색 눈이 비명처럼 크게 열렸다. 그 모든 게 다 너무 멀었다. 꿈같았다. 잇소리, 살 위에 질근거리는 젖은 호흡. 그리고 공을 들여 몇 번이고 깊게 박히는 날카로운 송곳니의 촉각. 멍했다.


이건 꿈일까? 아니면 뭘까… 


잠깐 그런 생각을 했었나. 너무 졸렸다. 너무 멀어. 의식이 조금씩 가물거렸다. 긴 눈꼬리를 촘촘하게 덮고 있던 기다란 속눈썹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신호가 바뀐 것은 그때였다.

차가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은호가 효경을 품에서 놓아주었다. 동시에 효경의 몸이 시트 위로 풀썩 쓰러졌다. 한정민이 잠깐 은호를 돌아보았다, 이내 말았다. 눈을 꽉 닫은 효경의 얼굴을 은호는 한참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효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얀 뺨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은호가 손을 펼쳐 제 입술을 천천히 쓸었다. 입 근처는 아직도 온통 달았다. 온몸의 감각과 이성이 아득하게 녹아버릴 정도로.

이건 그냥 ‘확인’이다. 입술 끝을 짓씹으며 은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


너였으면 좋겠어.


생각을 삼키며 은호는 흘러내린 효경의 셔츠 자락을 슥 끌어 올려주고 다시 물러났다. 창가로 돌아앉으며 은호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효경은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정민이 룸미러 너머로 은호를 오래도록 뚫어보았다. 이제 곧 신촌이었다.








* * *


졸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효경의 눈이 번쩍 열렸다. 집 앞이었다.



“…? 뭐야. 나 언제 왔어?”



갈색 눈이 한참을 끔벅끔벅 했다. 칠이 벗겨진 낡은 현관은 암만 봐도 익숙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졸았어? 걸어오면서 잔 거야, 나?

점심을 많이 먹어서 그래. 굼뜬 손끝으로 열쇠를 뒤적거리면서 효경은 툴툴거렸다. 주은호를 따라 차에 탔던 것까진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선가부터 기억은 뚝 끊어져 있었다. 실장님이랑 점심 얘기를 했고, 차가 막혔고, 어디 사느냐는 얘기를 했던 것도 같기는 한데… 여기까지 되짚자 헛웃음이 비실비실 터져 나왔다. 세상에. 아무리 편하다고 그래도 그 어색한 2인조 앞에서 잠들다니.

주은호한테 고마웠다고 인사나 해야지. 생각하며 효경은 현관을 열었다. 동시에 헐 소리가 먼저 터졌다. 제 침대 위에 누군가 이불을 돌돌 감고 팔자 좋게 늘어져 있었다. 호율이었다.



“잘 났다, 잘 났어.”



이제 아주 지 침대다. 자려면 곱게 잘 것이지 내 베개는 왜 끌어안고 자고 있어. 인형이야? 게다가 방 꼴은 또 이게 뭔지. 싱크대에 수북하게 쌓인 스팸캔은 어림 잡아도 너댓 개는 되어 보이고, TV는 켜져 있다. TV야 그렇다 쳐도 의자는 왜 넘어져 있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빌어먹을 야옹이는.

치울 게 태산이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신발부터 내던지듯 벗고는 방으로 올라오는 기척이 제법 컸다. 그래도 호율은 이불을 둘둘 감곤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게 효경은 은근슬쩍 괘씸했다. 기껏 밥은 먹었나 싶어서 걱정하면서 왔더니 저렇게 팔자 좋게 퍼질러 자고 있는 꼴이라니. 생각하니 걸음이 자연스럽게 침대로 향했다. 달게 잠들어 있는 등짝부터 걷어차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을 내려다보았을 때 반쯤 치켜들었던 왼다리가 스르륵 내려갔다. 마음이 사라졌다. 그 얼굴이 너무 평화로워서. 그보다는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어떻게 이렇게 생긴 게 우리집에서 자고 있지? 생각하며 효경은 호율의 곁에 슥 엉덩이를 묻고 앉았다. 다시 봐도 홀로그램이었다. 이 비주얼은.



“눈코입만 반듯하게 생겨 먹어선.”



잘 생겼다. 아니, 예뻤다. 아냐. 이 말도 안 어울린다. 잘 생기고, 예쁘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효경은 적당한 어휘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잘 생긴 놈이라면야 조금 전에도 질리도록 보고 왔다. 주은호라고. 하지만 호율은 주은호하고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주은호가 좀 더 날카롭고 남자다운 얼굴이라고 하면 호율은 좀 더 귀엽고 어려 뵈는데, 잘 생겼다. 미남보다는 미인이라는 말이 어울리겠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색 옅은 머리카락도, 그 색과 꼭 같은 긴 속눈썹도, 유려하게 뻗은 오똑한 콧날도, 아래쪽이 조금 더 도톰한 입술도. 이건 대체 무슨 조각이야. 보고 있으려니 괜히 얄미웠다. 코라도 꼬집어줄까. 역시 등짝이나 확 걷어찰 걸 그랬나. 그러다 효경은 이내 관뒀다. 마음이 약해진 탓이었다. 그러게 왜 이렇게 생겨 먹어가지고.



“얘 부모님은 대체 어떤 분들일까…”



궁금하다. 얘가 범이니까 아빠랑 엄마도 범이겠지? 그들도 얘처럼 변하는 걸까. 그렇다면 또 얼마나 근사할까. 그 두 분도 미남이고 미녀겠지. 이 얼굴이 그냥 하늘에서 똑 떨어진 건 아닐 거 아냐. 이런 얼굴들 셋이 다니는 모습을 떠올려 보자 효경은 왠지 흐뭇해졌다. 꼭 그런 느낌 아닐까. 빈 소년 합창단.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짓씹으며 효경은 쓰게 웃었다. 얼굴이나 감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방 정리부터 좀 해야지. 꼴을 보아하니 저녁에 먹일 스팸도 없을 게 분명했다. 이 야옹이 일어나기 전에 장이라도 봐야겠다. 또 참치나 스팸 아니면 먹지도 않을 테니까.

일어날까, 하던 순간이었다. 손목이 잡혔다. 동시에 시야가 뒤집혔다. 뒷목에서 매트리스가 크게 출렁거렸다. 저도 모르게 둥그렇게 열렸던 갈색 눈이 일순 좁아졌다. 위에서 제 양팔을 꽉 붙잡은 채로 노란 눈이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이 호랑이 새끼가, 진짜.



“자는 척 했지, 어?!”

“응, 했어요.”

“내려가라, 응?”

“싫은데.”



노란 눈이 씩 웃었다. 저렇게 생겨 먹은 주제에 힘은 또 장사였다. 효경이 아무리 버둥거려도 붙잡힌 양팔은 도무지 풀릴 기미가 없었다. 점차 성질이 뻗치기 시작했다. 놔, 안 놔!? 암만 소리를 질러도 호율은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귀찮은 듯 베개랑 이불을 발끝으로 휙 떠밀고는 그대로 효경의 몸 위로 올라와 다리를 단단히 옭아맸다. 팔에 이어 이젠 다리도 꼼짝할 수 없었다. 눈꼬리가 긴 눈이 매섭게 일그러졌다. 가는 말이 고울 수가 없었다.



“야, 이 고양이 새끼야. 놔. 놓으랬다, 어? 씨발, 이거 안 놔!?”

“아, 싫다니까요. 근데 왜 이렇게 늦었어요? 나 엄청 기다렸는데.”

“어디서 말을 돌려, 이 쪼그만 게. 아, 좀 놓으라고!”

“쪼그맣기는. 너보다 나이도 많은데.”



환갑이라 좋겠다, 이 무늬만 고삐리야. 그렇게 받아치려고 했다. 타이밍을 빼앗은 건 이번에도 효경이 아니라 호율이었다. 얼굴을 숙이는가 싶더니 욕을 할 새도 없이 호율이 낼름 효경의 뺨을 핥았다. 하여튼 징그럽게 고양이다. 혓바닥 안 치워!? 꽥 소리를 내질러도 호율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양팔을 움켜잡은 손에 힘을 실으면서 호율은 본격적으로 몸을 붙였다. 물릴 뻔 한 걸 요령 좋게 슥 피한 얼굴이 귀 쪽을 향했다. 그리고 둥그런 귓불을 답싹 물었을 때 효경이 일순 흡 숨을 삼켰다. 노란 눈이 크게 열렸다. 뭐지, 방금? 되게, 야릇한 소리가 났는데.


듣고 싶어. 


호율이 같은 자리를 거푸 핥았다. 잡힌 채로 효경이 크게 떨었다. 놔, 하지마, 놔. 호율은 집요하게 귓불 밑을 핥았다. 움직임을 따라 혀끝에 걸린 호흡이 천천히 뭉개졌다. 달뜨며 조금씩 흩어졌다. 그 소리에 호율은 어지러웠다. 멈출 수가 없었다.



“잠, 하지… 야, 거기 간지… 간지ㄹ…, 씨ㅂ, 아, 하지, 아으,…!”



잡힌 몸이 버둥거리며 이따금씩 크게 떨었다. 그 떨리는 감각들을 좇듯이 호율은 허겁지겁 입술을 문질렀다. 제발, 그만. 효경이 애원했다. 긴 눈꼬리 끝이 옅게 젖어 있었다. 호율이 대답했다. 안돼요.



“아, 근데 너무… 좋다. 알아요? 되게 기분이 이상해요. 나 지금.”

“그만, 거기 간지… 그만, 멍충아, 그만, 빨, 읏, ―”

“목소리 너무 예쁘다. 나 진짜 죽을 것 같아요.”

“누가, 멍충… 아, 거기, 흐, … 이상, 이상ㅎ, 아읍,!”

“아, 단내.”

“그만, … 그만, 아, 좀, 미친, 그만, 하응,…!”



너무 달아. 호율이 낮게 짓씹었다. 그 기분을 호율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자꾸 만지고 싶다. 자꾸 핥고 싶어. 자꾸 맡고 싶어서, 홀린 듯이 호율은 효경의 셔츠 틈을 헤집었다. 팔은 진작 풀렸다. 풀린 팔로 효경이 호율의 마른 등을 퍽퍽 쳤다. 호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더 맡고 싶어. 더 핥고 싶어. 더, 더, 더… 그때였다.

호율이 일순 우뚝 멈췄다. 셔츠 틈, 목덜미의 어느 깊은 한 지점에서.



“……”



모든 동작이 멎었다. 위화감을 느낀 건 효경이었다. 직전까지 제 목에 매달려 물고 빨고 장난을 치던 호율이 우뚝 굳어 있었다. 뭐야. 갑자기 왜? 생각하다 효경은 냅다 호율의 몸부터 떠밀었다. 하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침대 헤드 쪽으로 바짝 달아나면서 효경은 그제야 꽥 소리를 높였다. 이 고양이 새끼가.



“야, 너 어디에서 이런 나쁜 거 배웠어, 어! 이게 진짜 혼나봐야 정신 차리지?!”

“……”

“? 뭐야, 왜 대답이 없… 야.”

“……”

“호율아.”



우뚝 굳은 노란 눈이 움찔 했다. 그제야 호율이 효경을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웃음이 싹 걷혀 있던 노란 눈이 다시 부드럽게 휘어졌다. 둥그런 눈이 개구지게 웃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간지럼을 왜 그렇게 이상하게 타요? 난 그냥 놀자고 그런 건데.”



갈색눈의 긴 꼬리가 일그러졌다. 걱정이 아까웠다. 장난이었다니.



“뭘 그렇게 죽는 소리를 내요. 재밌어서 장난 자꾸 치게 되잖아.”

“……”

“아, 근데 나 이거 뭐예요? 다리 사이가 되게 딱딱해요.”

“……”

“어.”

“……”

“지효경 여기도 딱딱한 것 같…”



딱, 하고 정수리 후려치는 소리가 경쾌했다. 호율이 벼락 같이 제 정수리를 양손으로 움켜잡으며 엄살을 부렸다. 아, 아프잖아요! 대꾸 없이 효경은 후다닥 침대를 벗어났다. 그래놓고는 찬장부터 여는 모습에 호율은 잠깐 웃었던가. 그러다 또 한 번 노란 눈동자에서 웃음이 스르르 빠져 나갔다.

호율이 제 손을 펼치며 잠자코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에 이 손으로 효경을 만졌었다. 그때 맡았던 냄새는 분명 낯이 익었다. 모를 리가 없었다. 잊었을 리가 없잖아, 이 체취를.



“……”



수컷의 냄새였다. 익숙한, 낯이 익은, 그러나 멀고 아득한.









(7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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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율이는 아직 기초 성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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