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야옹아, 야옹아 ~03

1차 창작 BL


경인(庚寅)년 갑신(甲申)월 무술(戊戌)일, 그날의 달은 유독 높고 선명했다.

1950년, 그해의 한반도는 유난히 시끄러웠다. 밤하늘에 달빛 대신 인간이 쏘아올린 대포와 미사일의 섬광이 별처럼 부서졌던 그런 때였다. 나라가 둘로 쪼개져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형은 동생을, 동생은 형을 삼키고 미워했다. 형은 동생을 죽였고, 동생은 형을 배신했다. 한반도는 비릿한 피, 또 눅눅한 비 냄새로 가득했다. 전쟁은 비명과 울음조차 편히 허락하지 않았다. 하루아침 만에 가족을 잃고, 사랑하는 이가 눈앞에 죽어가도 사람들은 편히 우는 일조차 할 수 없었다. 전쟁이 하루가 되고 한달이 되며, 해를 넘길 무렵부터는 사람들은 죽음에조차 무뎌졌다. 하루에도 수백 구의 목숨들이 죽어갔고, 야산에는 이름 없이 버려진 병사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형이 동생을 죽였다. 동생이 또 형을 죽이던 시절이었다. 끔찍하다는 표현마저 사치처럼 여겨졌다. 그런 때였다.

1950년, 6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 그날은 새벽이었다. 이제 왕이 없어진 남쪽에서는 선거를 하고, 자신들을 이끌어줄 관료들을 직접 뽑았다. 전날은 큰 선거가 있었고, 일찌감치 투표를 끝마친 사람들은 저마다 공원이며 강가에 나와 쏟아지는 여름의 햇살을 맘껏 즐겼고,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지나치게 평화로운 날이었다. 울며 보채던 아이도, 아이를 안은 엄마도 모두 한참 달게 잠들었을 그 새벽에 북쪽 하늘에서 포성이 울려 퍼졌다. 탱크들이 철책으로 그어둔 얇은 금을 넘어 오며 전쟁은 시작 됐다. 오래고도 오랠 긴 이별의 시작이었다.
그날, ‘하늘’은 찬란히 빛났다. 전쟁이 막 시작되던 날이었다.

남쪽에 포성이 울려 퍼질 때 백두산은 전에 없이 소란스러웠다. 하나였던 나라가 둘로 쪼개지며 사람들은 각지로 흩어졌고, 국토 전역을 지배하던 맹수 일족은 광복과 함께 북으로 모여 들었다. 오래도록 한반도 땅 온갖 골짜기에서 어울려 살아가던 그들 일족은 일제 치정 이후로 살 곳을 잃었다. 일제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들 일족을 잡아 들여 산 채로 가죽을 벗기거나 머리를 잘라 집에 장식했다. 백두산은 일족에게 남은 마지막 피난처이자 동시에 오랜 성지이기도 했다. 단군이 이 땅에 처음 문명을 일으켜 세우기 훨씬 이전부터 백두산은 그들에게 오랜 성지이자 근원이며 고향이었다. 한때는 왕조의 상징이었고, 한때는 산신(山神)이라 불렸으며, 한때는 온갖 민담의 주인공이었던 그들은 이제 더는 한반도 남쪽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광복 때부터 자취를 감추었던 그들 일족은 모두 백두산에 모여 있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사람들과 섞여 사는 몇을 제외하고 일족의 상당수는 이 백두산, 천지 밑 깊고 깊은 동굴 속에 살았다. 세상은 그들을 범이라 하였고, 그들은 그들 자신을 호족(虎族)이라 불렀다.

백두산, 장막 같은 천지폭포 속으로 들어와 깊고 험한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오면 그곳이 호족들의 성지였다. 백두산 깊은 땅 속에 숨은 동굴은 엔간한 도시에 견줄 정도로 넓고 깊고, 컸다. 백두산 가장 깊은 땅 속에 숨은 것치고 동굴은 늘 온화한 봄 날씨 같았고, 밤과 낮의 경계 또한 뚜렷했다. 이는 동굴의 천정이 천지와 맞닿아 있는 덕이었다. 천지의 투명한 바닥은 마치 유리천장 같았다. 바깥세상만큼 밝지는 못해도 천지는 언제나 필요한 햇살을 동굴에 비춰주었다. 해도, 달도, 별도 모두 맑은 천지를 거쳐 동굴 속에 말간 빛을 쏟아냈다. 그 밤에도 달과 별은 천지의 천장 위에서 보석처럼 영롱히 빛을 냈을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시작되던 그 일요일 새벽의 일이었다.

‘하늘’에 큰 일이 벌어진다고 했었다.

― ……


하늘처럼 펼쳐진 천지의 투명한 바닥에는 다른 때보다 더 많은 달과 별들이 일렁거렸다. 꼭 유리 같은 천지의 바닥 아래, 동굴 가장 깊숙한 곳이 유난히 분주했다. 이 천지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다는 그 기와집은 기왓장도, 기둥도, 대문에 내려진 휘장도 모두 황금색이었다. 몇 개의 문을 거쳐 가장 깊은 내실도 꼭 그와 같은 황금색으로 치장 되어 있었다.

화려한 황금과 비단으로 장식된 방문 앞에 서 있던 것은 남자였다. 많이 봐줘야 20대 중반 정도나 됨직한 남자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뒷짐을 지고 방문 앞을 서성이면서 남자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손톱을 깨물고, 이리저리 제자리걸음을 했다가, 문 틈새를 괜히 기웃거리기도 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또 앉거나 일어서며 분주히 굴었다. 남자가 안달을 낼 때마다 단정히 묶어 허리까지 길러 내린 밝은 갈빛 머리칼이 흔들흔들 춤을 추었다. 조급해하는 모양새와 달리 남자의 머리칼도, 그 이목구비 또한 빚어낸 조각인양 아름다웠다. 자그마한 얼굴에 반듯한 이목구비, 말랐으나 선이 제법 또렷하게 잡힌 체구에 조급한 몸짓마저 귀인인 듯 기품과 품위가 있었다. 흔하고 평범한 태생이 아닌 것을 반증하듯 남자의 눈동자 색도 꼭 그랬다. 어떤 티도 섞이지 않은 맑고 선명한 눈동자는 눈부신 황금색이었다. 꼭 타는 태양 같은 눈동자를 와작 구기며 남자는 짧게 중얼거렸다.


― …때가 되었을 텐데.


풍기는 분위기와 달리 남자는 가볍다 싶을 정도로 조급을 부렸다. 남자는 지금 단단히 닫힌 방문이 열리는 순간만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달은 이미 서편으로 기울었고, 이제 곧 해가 뜰 시간인데도 안에선 여태 소식이 없었다. 문 틈새로 간간이 고양이 같은 낮은 울음소리가 들여올 때마다 남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안달을 했다. 대체 왜 이리 늦어, 왜 이리 늦는 게지. 남자는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선 자리를 왕복했다. 저쪽으로 갔다, 또 이쪽으로 갔다. 몇 번을 다시 더 왕복한 후에야 겨우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기척과 함께 남자가 부리나케 홱 시선을 돌렸다. 문을 열고 나온 것은 희끗희끗한 흰 머리의 노파였다. 문을 닫고 나온 노파는 무명천으로 제 손을 꼼꼼히 닦고 있었다. 남자의 커다란 눈이 천지만큼 크게 열렸다. 흥분한 목소리가 노파를 채근했다.

― 할멈, 어찌 되었나? 끝난 거겠지?

― 귀하신 분이 어찌 이리 안달을 하십니까. 아랫것들이 보면 웃겠습니다, 어르신.

― 아란은? 건강한가? 아픈 데는? 아픈 데는 없고? 할멈,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아란이 몸이 허약해서 말이네. 괜찮나? 괜찮은 게지?

― 어르신 숨넘어가시겠습니다. 너무 심려치 마셔요. 아란님께서는 안에서 쉬고 계십니다.

― 허면 아이는.

― ……

― 우리 아이는 어찌 되었나.


남자의 말에 할멈이 소리를 내어 웃었다. 제 아무리 귀한 신분이라 하나 눈앞의 남자는 자신의 젖을 먹고 컸다. 품에 넣고 길렀던 남자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재미나기도 한지 할멈은 한참이나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그러다 이내 찬찬히 말을 받았다. 할멈의 목소리도 제법 들떠 있었다.


― 건강한 아드님이십니다.

― …참말인가!

― 예, 어르신. 당신의 하늘을 짊어질 아들이시지요.


아들이라 했다. 아들. 이 나라, 이 세계의 하늘을 짊어질 아이. 나의 하늘을 짊어질 아이. 천지의 아이. 하늘의 아이.

포의 불빛이 별처럼 번쩍이던 날, 훤히 뜬 보름달 아래에서 ‘아이’는 태어났다. 남자의 타는 듯한 황금색 눈동자를 고대로 쏙 빼닮은 ‘아이’였다. ‘아이’의 첫울음은 천지를 넘어 백리까지 진동했다. 제 어미의 젖을 느릿느릿 빨며 아비인 자신을 향해 고갯짓을 하던 아이를 남자는 사랑스럽게 내려보았다. ‘아이’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1년이 넘는 긴 수태 시간을 견뎌내고 태어난 ‘아이’는 눈동자도, 그 털색도 태양처럼 반짝이는 황금색이었다. 완전한 순혈이었다. 막 태어난 ‘아이’는 본연의 모습보다는 자그마한 새끼 고양이와 비슷했다. 아직은 줄무늬도 옅어 세상 누구도 네가 범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겠지. 허나, 아이야. 너는 자라고 또 쑥쑥 자라 천지를 울리고 천하를 호령하게 될 것이다. 생각하며 남자는 작은 ‘아이’를 품 안에 소중히 안아 올렸다. ‘아이’는 천진한 얼굴로 제 아비의 손끝을 입에 물곤 젖앓이를 하듯 한참 오물거렸다. ‘아이’를 1년간 품고 있다 해산한 아내는 침소에 누워 지친 얼굴로도 온화하게 웃었다. 이 천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암컷이라는 아내, 아란의 하얀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남자는 다시 품에 안긴 ‘아이’를 어르듯 끌어안았다. 작은 ‘아이’는 호기심이 많은 듯 품에 안긴 채로도 꿈지럭거리며 주변을 보고 싶어 했다. 참 작은 ‘아이’였다. 참 작고 아름다운, 또한 고귀한 ‘아이’.

― 넌 신(神)이 되겠지.


우리는 그와 같은 존재다. 세상을 호령하고 이 한반도 땅의 명운을 가늠하는 성스러운 존재. 너는 이 땅에서 신이 되어 세계의 운을 관장하고 하늘을 짊어지겠지. 네가 짊어질 하늘은 그 어떤 하늘보다 찬란할 것이다. 티끌 하나 없이 타는 듯이 환한 황금색 눈을 향해 남자는 눈을 맞추며 웃었다. 빛나는 하늘, 찬란한 하늘. 그 하늘에게 아버지는 ‘호율(昊?)’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 호율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 ……

― 너는 이 하늘의 아들이다. 이 하늘의 태양이다. 이 세계의 빛이다.


하늘의 아들,

하늘의 태양,

하늘의 빛,

그리하여 이 세계의 빛.

1950년 6월 25일, 경인(庚寅)년 갑신(甲申)월 무술(戊戌)일. ‘빛’은 그렇게 태어났다.

남자가, 이 호족들의 어른이자 족장인 호연(昊沿)이 태어나던 그날처럼,

운명처럼.






먼 의식 저편에서 벨이 울었다. 아득한 꿈처럼.

“…으, 뭐야아…”


누운 채로 효경이 작게 몸을 뒤척거렸다. 코에 걸린듯한 숨소리는 잠투정에 가까웠다. 시끄러웠다. 시끄러워, 졸려 죽겠는데. 쿵쾅쿵쾅 울려대는 벨소리가 어쩐지 낯이 익었지만 효경은 모든 게 다 귀찮았다. 아침잠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깊게 잠드는 부류도 아니었건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눈꺼풀이 무거웠다. 피곤했다. 다른 날보다 유달리 더 무거운 머리를 베개 속에 푹 묻어가며 효경은 이불자락을 머리 위로 잡아 당겼다. 그러다 멈췄다. 머리끝까지 뒤집어 쓸 작정이었는데 뭐에 걸렸는지 이불은 꿈쩍도 하질 않았다.

뭐야, 돌에라도 걸렸어? 아님 또 어디 걸려서 꼬였나. 눈을 감은 채로 이불을 몇 번 뒤척이며 당겨보다 효경은 왈칵 짜증을 냈다. 여러모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불은 안 당겨져, 벨은 울려.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를 듣고 살인 충동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흥얼흥얼 따라 불러가면서 받을 법도 하건만 오늘따라 저 목소리가 왜 이렇게 고막을 득득 긁어오는지 모르겠다. 졸릴 때 들어놓으니 좋아하던 노래도 다 공해였다. 좋다고 받을 땐 언제고 이젠 이 벨소리를 선물해준 이찬을 괜히 욕하고 싶을 정도로. 그래도 벨소리는 끊어지는 법도 없이 주구장창 이어졌다. 기타 소리 한 번 참으로 요란했다.

“아, 씨발, 진짜 누구냐고, 아침 댓바람부터!”


잠깐 끊어졌다가도 기운차게 시작되는 기타 소리에 결국 효경이 냅다 소리를 질러댔다. 악다구니를 팩 쏟아놓고도 얼굴은 여전히 베개에 묻혀 있었다. 베개에 얼굴을 묻어놓고 효경은 벨소리를 따라 대충 허공을 휘저었다. 왼손을 뻗어가며 대강 침대 아래를 더듬더듬 했더니 낯익은 몸체가 손끝에 툭 걸렸다. 액정을 보기 위해 몸을 뒤집는 동안에도 벨소리는 쉼 없이 울려댔다.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눈을 끔벅이며 효경은 기어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짜증을 쏟아냈다. 이 빌어먹을 벨소리, 아주 내가 갈아버릴 거야. 벨소리 안 바꾸면 내가 지씨가 아니라 해씨다, 해씨. 짜증을 가득 남아 눈가를 세게 문질렀더니 그제야 흐릿했던 초점이 잡히며 시야가 좀 환해졌다. 그제야 액정에서 끔벅이던 이름이 눈에 잡혔다. 해이찬.

이 개새끼가 진짜. 씹듯이 뱉어가며 효경은 짜증스럽게 액정을 엄지로 밀며 전화를 받았다. 받자마자 꽥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어오, 진짜 이 잠도 없는 이찬 새끼가!!!”

― 어, 뭐냐. 자고 있었어? 야, 솔직히 지금까지 자는 건 좀 아니지. 해가 중천이시다, 지효경아.

“…몇 신데.”

― 11시 50분 넘어가고 있답니다, 우리 애기. 고만 자고 일어나야지?


아, 몰라, 더 잘래. 툭 뱉어내며 효경은 다시 베개에 풀썩 고개를 묻었다. 눈을 제대로 뜨고 나니 방안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해가 중천이라는 소리는 헛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머리 뒤로 펼쳐진 커다란 창에서 꾸역꾸역 밀려든 햇살이 공기를 환히도 물들였다. 방안 풍경은 딱히 전날과 달라진 건 없었다. 엄청나게 광활한 것은 아니어도 혼자 살기엔 넉넉하게까지 느껴지는 원룸은 오늘도 평화로웠다. 모두 여전했다. 무늬 없는 짙은 회색 벽지에 틈날 때마다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문질러 닦는 싱크대와 취향을 백분 반영한 가구들도 어디 하나 변한 것이 없었다. 70년대 미드에 나왔을 법한 빈티지한 디자인의 냉장고, 일부러 마감처리를 거칠게 해 나무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놓은 2인용 식탁은 모두 홍대를 돌며 효경이 직접 골라온 물건들이었다. 거기에 책상으로 사용 중인 낡은 재봉 작업대까지 더해지면 방주인의 취향이 참으로 명확하게 보이는 그런 방이었다. 구태여 말을 붙이자면 빈티지 레트로 스타일 정도 될까. 요즘의 흔한 노래들보다 70년대의 록과 80년대의 팝, 90년대 한국 가요를 좋아하는 효경의 취향은 사는 방에서도 흠뻑 묻어났다.

그래도 저 재봉 작업대만한 게 없지. 통화를 하며 방안을 훑어보면서 효경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옅게 웃었다. 재봉 작업대를 물려준 건 할머니였다. 달리 말하면 할머니가 남겨준 유일한 물건이기도 했다. 고집을 부려 대구 집에 가지고 왔던 걸 서울에 오면서 또 여기까지 들고 왔다. 물론 이제는 재봉틀도 없고, 그 앞에 앉아 손자의 옷을 지어주던 할머니도 없지만.

그립다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감상을 더 이을 수 없었던 건 순전히 핸드폰 너머에 있는 한 녀석 때문이었다. 아주 야단이 났다. 일어나, 일어나자? 우리 애기 일어나야지, 야, 지효경 또 자냐? 어허, 오빠 화낸다? 하면서 아양에 회유에 협박까지 늘어놓더니 종막에는 노래까지 불러대고 있었다. 아침이 오는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 내 품 안에 잠든 너에게 워우워우어어. 장난인 게 틀림없는 바이브레이션은 발음 하나하나가 또박또박해서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듣고 있으려니 괜한 웃음이 터지는 걸 효경은 손으로 꾹 틀어막았다. 그 채로 효경은 자연스럽게, 정말 아무 의미 없이 오른쪽으로 돌아누웠다.

일이 벌어진 건 그때였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라니 누가 나한테 아침 인사를, 이라던 의문은 다 터지지도 못했다. 하필 가장 먼저 보인 게 그 눈이었다. 밤 내내 꿈속에 둥실둥실 떠올랐던 바로 그 황금색 눈동자가 코앞에 있었다. 햇볕 탓인지 전날 보았던 것처럼 선명하게 빛나는 건 아니었지만 분명히 효경도 수차례 본 바가 있던 그 눈이었다. 예쁜 눈에 딱 어울리는 섬세한 속눈썹, 빚어낸 듯 날렵한 콧날 아래로 녀석은 참 눈이 부시게도 웃어 보였다. 그 웃음마저 참으로 찬란했다. 부드럽고 다정하게, 또 지극히 태연하게.

욕이 터질 뻔 했다. 오, 씨발, 진짜로 ‘야옹이’가 사람이 되어 있다니. 그게 꿈이 아니라니, 진짜였다니.

핸드폰을 떨어뜨리지 않은 게 기적이었다. 마주 보고 누운 꼴이 되어서도 효경은 리액션 한 번 제대로 못하게 온통 굳었다. 문제의 ‘야옹이’는, 아니 호랑이 새끼는 나란히 누워서는 다리 하나를 이불 위에 척 올려놓고는 팔베개를 한 채로 효경을 빤히 보고 있었다. 어쩐지 아까 이불이 무겁다 했다. 아예 이쪽으로 돌아누워 보고 있는 폼을 보아하니 방금 일어난 분위기는 아니었다. 기가 막혀서, 또 놀라서 눈만 끔벅끔벅 하고 있자니 녀석이 가만히 효경을 들여 보았다. 그러더니 어, 했다. 동공이 커서 유난히 장난스러운 황금색 눈이 빙글빙글 웃었다. 귓가에선 해이찬이 연거푸 효경을 불러대고 있었다.


“오늘도 되게 좋은 냄새 나네요.”

― 효경아? 야, 지효경. 또 자냐, 너?

“어? 어어, 아니, 안 자.”

― 암만 봐도 우리 애기 조는 것 같은데. 오빠 말에 대꾸도 없고.

“미친. 누가 오빠…”

“단내 난다.”


기가 딱 막혔다. 어이없고 얼척 없고 덤으로 정신까지 사라질 판이었다. 저 황금색 눈 태연하게 끔벅질 하고 있는 거 봐라. 게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제 살을 문질러 대고 코를 박아오는 이 대담함이라니. 핸드폰을 붙잡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다면 효경은 진작 소리라도 질렀을 게 분명했다. 이게 대체 아침부터 남의 목덜미는 왜 킁킁거리고 있는 거야, 짐승종자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다 효경은 문득 등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짐승은 짐승이지. 아주 짐승이었다. 그것도 그냥 짐승도 아니고 그게…

잠깐.


― 지효경, 듣냐? 또 조냐, 너?

“……”

― 효경아.

“어? 들어, 안 졸아. 깼어.”


손끝으로 제게 달려들던 갈색 머리통을 겨우 떼어놓으며 효경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반은 장난이었는지 갈색 머리는 손끝에 참 쉽게도 떠밀렸다. 어깨를 넘어가는 부스스한 긴 갈색 머리칼 아래로 황금색 눈동자가 빙글빙글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이게 다 이 망할 눈 때문이야. 저 눈 때문이었다. 의식을 잃기 전에도 효경은 분명히 이 황금색 눈을 보고 있었다. 아직도 생생했다. 선 하나는 기똥차게 잘 빠진 웬 미남이 제 허리 위에 떡 하니 타고 앉아서는 자신을 야옹이라고 소개 했었던가. 그런 한편으로는 야옹이라고 부르지 말라면서 제 이름을 가르쳐줘 놓고서는 진짜 모습을 보여 준다 어쩐다며 몸을 풀어가며 밍기적 거렸었다. 세 달 동안 도저히 믿기지 않을 속도로 쑥쑥 자라났던 야옹이는 사람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마지막에는 아주, 몹시, 억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거대해졌었다. 이건 3단 입체 변신도 아니고.

효경은 그 이후의 기억이 없었다. 그대로 누워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이러니 ‘꿈’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차라리 꿈인 쪽이 더 현실적일 그런 일이었다. 꿈 한 번 참 리얼하게도 꿨구나, 뭐 그 정도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암만 생각해도 꿈만 같은 간밤을 회상하며 효경은 단 한 가지를 분명히 기억해냈다. 정신을 잃기 전에 자신을 선명히 들여다보고 있던 타는 듯한 눈동자, 덮치듯 뻗쳐오던 그 거대하고 늘씬한 몸체와 그 몸통을 휘어 감던 선명한 줄무늬들.

호랑이.

― 우리 애기 또 대답 없지.


들리는 목소리에도 효경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번뜩 머릿속을 스쳐간 단어 때문이었다. 호랑이. 그 단어를 떠올린 것뿐인데도 이상하게 목이 바싹 탔다. 말 한 마디 꺼내지도 못하고 마른 침만 꼴깍 삼켰더니 눈앞에서 녀석이 픽 하고 웃었다. 그래놓고는 또 한 번 바짝 고개를 붙여 다가왔다. 이 새끼가 진짜 어딜 자꾸 들이대, 애정결핍도 아니고. 생각에 효경이 와작 눈썹을 구기던 찰나, 주춤 물러섰던 뒷목이 단번에 덥썩 잡혔다. 그 채로 녀석은 천천히 제 코를 효경의 코끝에 문질러왔다. 이누이트도 아니고 무슨, 나랑 코 문질러서 인사 하는 것도 아니고. 효경이 기가 막히건 얼척이 없건, 그 무엇이건 간에 호율은 상관도 하지 않았다. 그저 코끝을 느리게, 몇 번이고 부딪치며 문지르며 녀석은 나른하게 눈 끝을 접으며 웃었다. 웃으며 호율은 입모양으로만 이렇게 버끔거렸다. 냄새 왜 이렇게 예뻐요? 설레게.

이 미친 야옹이가. 저도 모르게 우득 입술을 씹으려니 전화기 너머에서 연거푸 이름이 불렸다. 효경아, 하고 재차 불러오는 이찬의 목소리에 효경은 또 한 번 어? 하고 대답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바보 같은 목소리였다.

― 뭐냐, 지효경. 옆에 누구 있어?


하여튼 해이찬은 해이찬이다. 정작 중요한 데선 둔하면서 이런 눈치는 기똥차지. 정확하게 찔러 들어오는 지적에 효경은 딸꾹질을 참아가며 부인했다. 아아니이, 하고 받아치는 말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그런데도 눈앞의 건방진 야옹이는 꿈쩍은 커녕 눈썹조차 까딱하지 않았다. 느긋하게 웃으면서 다시 한 번 제 코로 효경의 코끝을 쿡 찔러왔다. 그리고는 말릴 새도 없이 효경의 코끝을 얕게 깨물었다. 거기에선 효경도 참지 못하고 기어이 소리를 질러댔다. 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귀 끝까지.

“이게 진짜, 야!!!! 죽을… 저리 안 가?! 저리 안 꺼… 야, 야!!”

― 너 진짜 누구랑 같이 있지. 누구냐? 여자? 여자 생겼어?! 헐, 지효경 대박이다. 오빠 놓고 바람 피우냐, 너 지금?!

“바람은 무슨 지랄하고 자빠졌… 야, 안 떨어져?!!!!!”

― 지효경씨 옆에 누구냐고, 어?

“아, 누가 아니고 우리집 야옹… 악!! 이 씨발 망할 고양이 새끼가 진짜!!!!!!!”


이게 지금, 핥았어, 나를.

뺨 위를 스치는 혀끝에 효경은 그야말로 펄쩍 뛰었다. 허리를 튕겨가며 벌떡 일어났더니 뭐가 그렇게 재미있고 신나는지 호율은 아주 배를 잡았다. 배를 잡고 소리를 죽여 가며 킥킥 웃는 꼴에 효경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웃기냐? 웃겨? 이 씨발, 넌 이게 웃기냐고! 울컥 하니 주먹이 먼저 나갔다. 휙 휘두른 주먹에 호율은 요령 좋게 몸을 슥 뒤로 뺐고, 효경의 하얀 주먹만 애꿎게 허공을 휙 가르며 헛스윙을 했다. 호율은 여전히 효경을 향해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저토록 여유 넘치는 얼굴이란. 이래서 어른들 말씀이 틀린 게 하나 없었다. 고양이는 요물이고 잔망덩어리라더니 아주 딱이네. 물론 고양이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짜증이 터지니 열불이 치솟았다. 홧홧한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면서 효경은 왈칵 이불부터 걷어냈다. 여전히 얼굴과 어깨 사이에 핸드폰을 껴둔 채로 침대에서 좀 빠져 나가보려고 하는데 이불하고 엉킨 다리가 잘 풀리지 않았다. 아니, 꼬인 건 이불이 아니었다. 이 망할 고양이 새끼 하는 짓 좀 봐라. 가지가지 갖가지 각양각색이다. 효경의 장딴지에 제 다리를 척 걸고는 느긋하게 앉아있는 이런 꼬락서리라니. 그래놓고 죽일 듯이 노려보는 효경을 향해 입모양으로 나직이 속삭여주는 뻔뻔함까지 보여주었다. 왜요, 하고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이.

뭘 더 어쩌고 싶어도 하필이면 통화중이고 하필이면 전화를 걸어온 상대가 해이찬이었다. 너 거기에서 한 발자국도 더 오지마. 소리를 죽여 입모양으로 엄포를 놓고 효경은 다시 핸드폰을 고쳐 잡았다. 침대 헤드에 기대면서도 효경은 호율을 있는대로 노려보고 있었다. 너 이 새끼 여기서 넘어오면 진짜 죽인다. 그렇게라도 말해오는 듯한 시선에 호율은 그저 어깨만 으쓱거렸다. 역시 멀쩡한 건 생김새뿐인 모양이었다. 저토록 우월한 상판대기로 보이는 저 얼척 없는 뻔뻔함이라니. 생각하며 효경은 다시 핸드폰 너머에 말을 걸었다.

“이제 됐어.”

― 뭔데. 야옹이랑 뭘 하고 놀아대서 아침부터 이렇게 격해?

“나 지금 너란 새끼랑 농담 섞을 기분 아니거든, 해이찬.”

― 자꾸 화내면 이쁜이 못난이 된다고 내가 했냐, 안 했냐. 응, 이쁜아.

“내가 그 소리 하지 말랬…”

― 맞다. 지효경아. 너 오늘 학교 안 가냐?


한 마디 팩 치려고 했더니 말꼬리 한 번 요령 좋게도 돌아갔다. 돌아가는 말꼬리에 효경은 간단히도 휩쓸렸다. 학교? 웬 뜬금없이 학교. 받아치는 말투는 아까처럼 마냥 날 서있거나 짜증스럽지 않았다. 맞은편에서 야옹이가, 호율이 허리를 들어앉으며 길게 기지개를 켰다.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또 눈꼬리를 휘어 접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 얼굴에 왠지 귀가 조금 홧홧했다. 쓸데없이 잘 생겨서 그래, 쓸데없이. 괜한 생각에 머리를 붕붕 흔들고 있으려니 핸드폰 너머에서 이찬이 가볍게 말을 받았다. 효경아,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참 다정했다. 이마저도 쓸데없었다.

― 나와. 은호 불러서 셋이 점심이나 먹게.

“웬 점심이야. 귀찮아. 안 갈래.”

― 야, 오빠가 애기 맛있는 거 먹이려고 이러잖아. 나와라, 어? 뭐 먹고 싶냐? 샐러드바 갈까? 야, 말만 해. 오빠가 다 사줄 테니까.

“오빠는 무슨. 이찬 새끼 꼴값 하지, 또.”

― 우리 애기 말 잘했다. 얼굴 값 하고 있으니 꼴값 맞지. 야, 모르냐? 원래 생긴 놈들이 생긴 값 하는 거거든.

“아, 됐다니까. 귀찮다고.”

― 아, 나오라고. 미안해서 그러니까.

뭐가 미안한데. 뱉는 목소리는 퉁명스러웠지만 작았고, 아까보다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그 목소리에 이찬이 연거푸 덧붙였다. 미안, 진짜로 미안, 하고.

― 너 그렇게 두고 가니까 괜히 맘이 쓰여서. 기대했을 거 아냐. 니가 이해 좀 해줘라. 내가 좀 어디 꽂히면 무신경해지는 게 있잖아. 알지, 응?

“……”

― 미안하다, 효경아.

“됐어. 뭐 사과할 일이라고 계속 미안하대.”

한심스럽다. 효경은 그렇게 생각했다. 해이찬이 아니라 자신이. 이게 참 안 된다. 주은호는 해이찬이 지효경한테 참 약하다, 무르다고 했는데 실상은 이런 식이었다. 어떻게 해도 결국 결정적인 부분에서 해이찬한테 져주는 건 자신이다. 물론 주은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꼭 이랬다. 유난히 해이찬에게 짜증이 많은 지효경, 그런 지효경에게 하나하나 일일이 다 져줘가며 달래주는 해이찬. 공주님 모시는 거야? 동아리 여자 선배가 툭 던졌던 농담에 효경은 얼굴이 시뻘겋게 익으며 아니라고 했고, 이찬은 그때에도 넉살 좋게 자신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받아쳤었다. 누나 몰랐어요? 효경이 공주지, 왕자한테 어울리려면 공주 맞지. 그 소리에 정강이를 걷어찼던 건 둘째 치고, 효경은 그 대외적인 이미지가 가끔 억울했다. 봐, 보란 말야. 결국에는 다 이해하고 받아주는 건 나잖아. 이래서 반한 쪽이 억울한 거다. 잘 되어도 본전 밖에는 건질 수가 없으니까.

서럽네, 진짜.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푹 터졌다. 저도 모르게 가라앉은 눈꼬리가 시무룩했다. 맞은편에서 누가 그걸 한참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건 깨닫지도 못했다. 미안하다는 사과를 들어도 효경의 기분은 개운하지 않았다. 친구니까 하는 거지, 이런 소리. 친구니까. 너한테 나는 그냥 딱 놀려 먹기 좋은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까. 난 아닌데 얘는 그렇다는데 뭘 어쩌겠어. 아마 평생 이 마음을 말하거나 전할 날도 없겠지. 어차피 혼자 앓다 죽어버릴 그럴 감정이었다. 어쩔 수 없잖아. 반한 건 내 쪽인데.

늘 이런 식이었다. 좋아하면 들이대면 그만이라고 사람들은 잘도 쉽게 말한다. 그 말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효경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관계란 건 일방적인 게 아니다. 하물며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데. 손바닥 마주치라고 펼쳐줘야 소리라도 내보겠는데 해이찬은 주먹만 꾹 쥐고 있다. 그럼 어쩌겠어. 참는 수밖에는. 가끔 답답하고 속 아파도 견디는 수밖에는. 그저 평생 혼자 앓다 죽는 수밖에는.

해이찬이 정말 몹쓸 놈이고 개새끼였다면 좋았을 걸 그랬다. 효경은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면 아예 모르는 사이였거나, 만나도 어색한 사이였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았을까. 그럼 포기라도 일찍 했을 거 아냐. 미워할 수나 있었으면 가슴은 진작 편해졌을 텐데 안타깝게도 해이찬은 너무 좋은 남자였다. 누구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다. 세상 누구를 만나도 제 편을 만들어버리는 미친 친화력은 해이찬의 성격이 그만큼 좋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잔인했다. 어떻게든 좋아하고 마니까. 이미 좋아해버리기 시작하면 싫어질 이유조차 없는 게 너니까, 해이찬. 아마 난 지금보다도 더 오래도록 널 기억하고 널 아파하겠지. 어쩌면 평생동안.

이런 생각해서 뭐해. 꿀꿀하게. 생각하며 효경은 괜히 손을 펼쳐 제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자고 일어난 터라 까치집이 앉은 갈색머리가 이리저리 헝클어져 엉망이었다. 한숨 대신 입술만 짓씹고 있으려니 이찬이 다시 말을 걸었다. 이번에도 달래는 듯한 말투였다.

― 학교 올 거지? 안 오면 안 된다. 너 올 때까지 기다릴 거니까.

“됐어. 갈 거니까.”

― 온다면서 목소리는 또 왜 그러냐. 풀은 잔뜩 죽어서.

“아침이라 잠겼나보지.”

― 아닌데. 지효경 맘 상했을 때 목소린데. 너 그거 나 때문이냐? 아니지?

너 때문이야, 나쁜 놈아. 너 때문에 그러는 거야.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말을 효경은 그저 꿀꺽 삼켜 넣었다. 진심을 눌러 참는 건 이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1년이 넘었다. 이찬의 앞에서 하고 싶은 말들은 참고 하고 싶지 않은 말들을 뱉어내게 된 지도 벌써 꼭 1년이었다. 그 1년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정말 일도 아니지. 생각하며 효경은 괜히 트집을 잡듯 짜증을 던졌다. 올라가는 말꼬리는 해이찬을 대하는 평소의 지효경 그대로였다.

“미쳤냐? 자의식 과잉이야? 아니거든? 하여튼 자뻑 새끼가. 됐어. 됐으니까 끊어.”

― 어, 너 진짜 와라. 오빠 바람맞히면 안 된다, 우리 애기?

“미친놈아, 애기는 무슨. …보고.”

― 너 안 나오면 쳐들어가서 끌고 나올 거니까.

“아, 알았다고!”


우리집이 어딘지도 모르는 주제에 무슨. 팩 타박을 던져놓고 효경은 짜증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종료 버튼을 꾹 눌러놓고 대충 협탁 위로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아무렇게나 던진 핸드폰이 나무 협탁 위를 구르기가 무섭게 맞은편에서 말이 터졌다. 여태 쭉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황금색의 커다란 눈동자가 흥미로운 듯 데구르르 굴렀다.


“누구예요?”

“말하면 알아? 누구건 말건.”

“…해이찬?”

고작 이름 석자였을 뿐인데 말을 잃었다. 호율은 효경이 잠깐 버벅 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맞췄네. 짧게 돌아온 대답에 효경은 한 번 째리고 말았다. 아침부터 잠도 다 깨기 전에 해이찬이랑 말을 섞어놨더니 머리가 온통 멍했다. 멍한 기분을 더 알딸딸하게 만드는 눈앞의 이 고양이라는 녀석이겠지만. 아니, 호랑이.

호랑이라니, 암만 봐도 사람인데. 아직도 어제의 일이 믿기지 않아 효경은 슬그머니 호율을 흘끔거렸다. 대놓고 쳐다보진 못하고 곁눈질만 던지고 있으려니 호율이 불쑥 허리를 들어 일어났다. 허리를 들기가 무섭게 반쯤 설피 덮여 있던 홑이불이 호율의 몸 위를 미끄러지며 떨어졌다. 그와 함께 효경이 저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질렀다. 야! 하고.

“야, 일어나지마, 일… 일어나지마!”

“? 무슨 소리예요, 갑자기.”


너의 그 알몸이 낯 뜨겁고 민망하고 남사스러워서 그런다, 왜! 그렇게 대답하는 대신 효경은 시선부터 홱 피했다. 귀 끝이 홧홧했다. 이게 다 저 망할 야옹이 때문이야. 저 녀석 몸은 왠지 좀 그런 느낌이 있었다. 같은 남자인데다 제대로 드러난 건 상반신 뿐인데도 사람 기분 부끄러워지게 하는 그런 기분. 체격부터 몸선에 생긴 것까지 죄다 현실감이 없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쳐다보는 이쪽이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남자인데, 쟤도 남자고 나도 남자인데.

정작 호율은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효경의 반응이 의아한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만 이내 길게 기지개를 켰다. 길고 마른, 허나 잔근육이 보기 좋게 붙어 있는 팔을 쭉 뻗자 몸의 선을 따라 얕은 힘줄과 근육들이 피부 위로 보기 좋게 도드라졌다. 피한다고 피하던 효경이 그 대목에선 저도 모르게 호율을 흘끔거렸다. 진짜 어떻게 벗은 몸까지 저렇게 생겼지.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맵시 좋은 몸은 이리저리 잘도 움직였다. 원래 타고 난 근육 자체가 유연한 모양인지 휘젓는 폼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긴. 어제 그 호랑이도 그랬었다. 그게 꿈인지 생시인지는 아직도 구분이 잘 가질 않지만 효경이 늘 TV나 사진 등으로 보아오던 호랑이의 느 느낌은 아니었다. 단순히 육중한 것이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균형 있게 맵시가 잡혀있는 그런 몸이었던가.

사람 되는 호랑이들은 다 저런가. 그런 생각을 멍하니 주워섬기고 있으려니 호율이 다시 허리를 툭 털며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이번엔 효경의 말보다 몸이 더 빨랐다. 들썩이며 일어나는 허리를 잡아가며 효경은 제발,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꼬리가 길게 놓인 눈이 난감한 듯 구겨져 있었다.


“벗고 좀 다니지 말라니까, 너. 옷이라도 입든가!”

“옷? 왜요?”

“야, 왜냐니 당연히…”

“아, 그렇구나. 여기는 천지가 아니었지.”


천지라는 곳은 대체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생겨먹은 현실감 없는 외모들이 나체로 돌아다닌단 말인가. 효경이 아는 천지라곤 백두산 천지뿐이었다. 칠성 사이다와 괴물이 산다는 헛소문, 칼데라 호수, 일박이일 팀이 낑낑 거리며 올라가던 가파른 계단 정도로만 알고 있던 천지에 대한 효경의 환상이 사정없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승기가 민족의 영산이라고 만세 부르던 그 천지는 어디에 갔냐고. 아니면 천지라는 이름의 다른 장소가 또 있는 걸까.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또 이해는 됐다. 어제까지 고양이였다가 갑자기 사람이 되었는데 옷이란 게 있을 턱이 없겠지. 그래도 호율 딴에는 확실히 ‘옷’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는 듯 싶었다. 자신이 사람이 되어 있다는 사실만큼.

“새끼에서 막 성호가 되었더니 그게 익숙하질 않네요.”

“성호라니, 그게 뭐야.”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죠. 아, 옷 하나만 빌려도 돼요?”


티셔츠 하나만 줘요. 덧붙이며 웃는 얼굴에 효경은 잠시 얼떨떨해졌다. 알기는 확실히 알고 있는 모양이다. 얼핏 보니 키는 자신과 비슷하고, 체격은 호율 쪽이 좀 더 클 것 같긴 하지만 대충 입혀도 맞을 듯 싶기는 했다. 효경이 주은호처럼 제 몸에 꼭 맞는 셔츠나 피케 셔츠를 즐긴다거나 해이찬처럼 티셔츠도 스키니하게 입고 다니는 편이라면 나가서 면티라도 하나 사다 입혔어야 됐을 테지만.

어쨌거나 저 몸부터 가려야겠다 싶어 효경은 그제야 침대에서 내려왔다. 짧게 기지개를 켜고 행거 쪽으로 걸어가고 있으려니 등 뒤에서 말이 터졌다. 웃음기 잔뜩 묻은 목소리가 참으로 천진했다. 꼭 아침나절 말간 햇살처럼.


“그냥 같이 벗는 게 어때요?”

“내가 왜?”

“편하니까?”


말과 함께 행거 쪽에서 둘둘 만 티셔츠 하나가 호율의 얼굴에 사정없이 꽂혔다. 그래도 호율은 좋다고 낄낄 웃었다. 2010년 6월 26일, 토요일 아침이었다.




* * *

“호족(虎族)이라고 들어봤어요?”

2인용 테이블이 이렇게 꽉 차기는 처음이었다. 자기 공간이 침범 당하는 걸 원체 싫어하는 효경은 아무리 가까운 동기나 친구들이라 해도 집에 데려오는 일이 없었다. 혼자 살기에는 좀 적적하다 싶은 공간이, 또 비어있던 식탁이 이렇게 북적이는 건 서울에 올라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얼굴에 던져줬던 티셔츠와 반바지가 아직 불편하고 어색한지 호율은 무릎을 모아 앉은 채로 몇 번이나 자세를 고치며 뒤척거렸다. 팔도 제대로 끼워 넣을 줄 몰라 헤매는 걸 결국 효경이 입혀줬다. 너 바보야? 이런 것도 못 입어?! 잔소리를 팩 쏴주면서도 효경은 티셔츠에 트렁크, 반바지까지 착실하게 몸에 밀어 넣어줬다. 불편해하면서도 호율은 효경이 옷을 입혀주는 게 딱히 싫지는 않은 모양인지 제법 얌전했다. 새 트렁크의 포장을 뜯어 입혀주면서도 효경은 호율의 몸을 똑바로 바라보질 못했다. 허리의 아래에서 눈을 피하는 효경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호율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던가. 괜히 홧홧한 기분에 효경은 씻겠다고 훌렁 욕실로 들어갔고, 다 씻고 나왔더니 이 얄미운 야옹이는 테이블에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떡 앉아 있었다. 주인이 자기를 위해 사온 게 틀림 없는 참치 캔을 따보겠다고 낑낑대는 모양새에 효경이 기가 찬 듯 코웃음을 쳤다. 줘보라며 훌렁 빼앗아다가 캔을 따줬더니 호율은 정말, 진심을 다해 기쁜 듯이 함박 웃었다. 좋다고 효경에게 달려들었다가 알밤 한 대를 맞고 난 후에야 다시 식탁에 앉았다. 억지로 쥐어준 포크로 낑낑 거리면서도 호율은 차츰차츰 익숙해졌다. 한 캔을 시원하게 비우는 모습에 효경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래도 복스럽게 먹는 모습이 싫진 않아서 효경은 한참 호율이 참치캔을 비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물었다. 너 정체가 뭐야, 하고.

그랬더니 오히려 질문이 돌아왔다. 호족이라니. 난생 처음 듣는 생소한 소리에 효경이 얕게 눈썹을 구겼다.


“호족이 뭔데. 지방 호족?”

“그건 호족(豪族), 호걸 호에 겨레 족. 내가 말하는 건 호족이에요. 호걸 호가 아니라 범 호.”

“한자는 엄청 잘 아네.”

“우리한테 한자는 중요하거든요. 어릴 때부터 배우기도 하고… 아, 맞다. 그럼 다르게 물어볼게요. 범. 범은 알죠?”


범?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 전에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기는 했다. 할머니였을 거다. 옛날엔 골짜기마다 범이 많았다고, 자신도 범을 본 일이 있었다고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던가. 까마득한 기억을 되짚으며 효경이 잠시 미간을 좁혔다. 알겠다는 듯 효경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받았다. 호율은 캔에 남아있던 참치를 포크로 싹 긁어내고 있던 참이었다.


“알아. 호랑이가 범이잖아. 범 호(虎). 호랑이(虎狼?) .”

“호랑이랑 범은 달라요. 진짜 모르는 거예요?”

“같은 걸 다르게 부르는 거 아냐?”

“와, 대박이다. 장로들 말이 딱 맞네. 일제가 호족들 몰아내면서 있는 역사도 전부 싹 말살했다더니 진짜 요샌 다들 모르나봐.”

무슨 소리인지를 모르겠다. 일제는 왜 나오고 장로들은 또 뭐야. 영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가 나오자 효경의 얼굴이 절로 구겨졌다. 역사를 지운 건 또 뭐고. 물론 일제 때 묻히고 왜곡 당한 역사가 많다는 건 효경도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그거야 고등학교 교과 과정 잘 마치면 다들 상식으로 아는 거고. 그게 대체 호랑이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호랑이랑 범이 다르다는 건 또 무슨 소리고.

딴에는 심각한 문제인지 호율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까닭을 모르겠다는 효경을 두고 호율은 팔짱을 낀 채 고민에 빠졌다. 미간까지 좁아지는 것이 어디에서부터 얘기를 해야할지 정리가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짧게 고민하더니 호율은 이내 아 했다. 그리고는 빈 캔과 포크를 턱 내려놓고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주보는 황금색 눈이 영 진지했다.


“호랑이는 알죠?”

“알아. 그리고 너도 호랑이잖아.”

“설명을 쉽게 하자면 그렇기는 한데, 정확하게는 아니에요. 호랑이랑은 다르다니까요.”

“뭐야. 왜 이렇게 자꾸 정체가 바뀌어?”


뭐 이런 변덕이 다 있는가 했다. 야옹이였다가, 인간이었다가, 호율이라고 부르라고 하더니만 호랑이로 떡 하니 변해놓고 이젠 또 아니란다. 정리가 똑바로 되지 않아 듣고 있는 효경도 머리가 다 아파올 지경이었다. 그래도 코웃음을 치거나 짜증을 부리진 않았다. 말을 잇는 호율이 너무 진지한 탓이었다.

“호랑이라고 하면 호랑이죠. 하지만 그냥 단순한 호랑이는 아니라구요. 말했잖아요.”

“……”

“―범.”


짧게 떨어진 말은 한 음절에 불과한 데도 박력이 있었다. 귀를 녹일 듯 달콤한 미성으로 낮게, 진지하게 뱉어낸 말 한 마디는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키는 힘이 있는 듯 했다. 때문인지 효경은 다소 흠칫 했다. 그 얼굴에 호율이 눈 끝을 접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럴 때의 황금색 눈동자는 봄 나절, 따스한 아침 햇살 같은 것을 떠올리게 했다.


“세상은 그렇게 부르지만, 우리는 우리를 호족(虎族)이라고 불러요. 한반도 본토에서 살 때엔 아마 고려 범이라고 불렀다는 것 같지만요.”

“그렇게 말해도 뭐가 다른지 차이를 잘 모르겠어.”

“쉽게 설명하면 이래요. 호랑이는 그냥 호랑이죠. 사람으로 변하거나 하지 않아요. 나도 완벽하게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일단 인간의 모습을 하고는 있잖아요. 호랑이는 그게 안돼요.”

모든 호랑이가 다 사람인 건 아니란 뜻이네. 그렇게 말을 받았더니 호율이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양손으로는 빈 참치 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양이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렇죠. 쓸 수 있는 능력도 수명도 전혀 다르구요.”

“수명이라니, 왜. 범은 더 오래 살아?”

“엄청 오래 살죠.”

“얼만큼?”

“글쎄요. 그냥 호랑이 일족들이 10년에서 20년 정도라면 호족은 아마… 300에서 400년쯤?”


떨어진 말에 효경의 입이 절로 떡 벌어졌다. 엘프야? 느티나무야? 참으로 희한한 일도 다 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효경은 눈앞에 앉아 있는 호율의 나이가 신경 쓰였다. 저를 보며 웃고 있는 얼굴은 10대 후반에서 갓 스물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또래이거나 두어 살 어린 정도. 사실은 저렇게 어린 얼굴을 하고서 알맹이는 나보다 한참 어른이고 할아버지고 그런 거 아냐? 생각하며 효경이 조심히 운을 뗐다. 호율을 마주보는 눈빛에 의혹이 가득했다.


“그럼 너는 몇 살인데.”

“저요? 어제 딱 60 됐네요.”

“육십… 환갑이라고?!”


기가 딱 막혔다. 저 얼굴로 환갑이란다. 우리 아빠보다도 나이가 많잖아. 효경은 한참이나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이 안 됐다. 아니 근데 그 나이를 먹어놓고 존대는 왜 쓰는데. 그리고 왜 자신은 그렇게 당연한 듯 반말을 하고 있었을까. 야옹이여서? 늘 쓰던 말이 반말이라? 그건 어쩔 수 없잖아. 처음 주워올 때 내 손 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았었는데, 세상에, 그 크기로도 이미 쉰아홉을 먹었다니. 어제부터 연속기로 터지는 말도 안 되는 일들에 효경은 적잖이 타격을 받았다. 자꾸만 의식이 아득해지려는 걸 호율이 들여보며 빙글빙글 웃었다. 아무래도 녀석은 효경의 이런 반응이 재미있는 듯 했다. 그 속을 다 알겠다는 듯 호율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괜찮아요, 하면서.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호족의 나이 개념은 인간하고는 다르거든요. 인간의 성년은 스물이죠? 호족은 60년, 내 나이가 딱 성년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여러 사정’으로 인간 세계 속에 섞여 살 때엔 나이를 딱 3분의 1로 줄여서 쳐요.”

“뭐야. 그럼 스물?”

“인간 나이로 치면 그렇죠. 나이 먹는 속도가 인간에 비해 딱 세 배가 느리다고 하니까.”


존대는 안 써도 되는 모양이었다. 이건 다행이네. 마음을 놓다가 효경은 흠칫 했다. 뭘 이런 데서 안심하고 있어, 나는.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건 여태 불러왔던 호칭과 태도를 수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건 다행이었다. 암만 모습이 변했어도 세 달을 데리고 살았던 고양이한테 존대라니, 뫼시듯 어른 대접이라니. 하기야, 원래 고양이는 모시는 존재라고 남들은 그러더만. 어쨌거나.


“이 정도면 대충 설명 됐죠?”


확실히 납득은 대충 갔다. 일단 그거다. 야옹이라고 주워왔더니 얘가 호랑이, 것도 그냥 호랑이도 아니고 성호(成虎) 되기 직전의 ‘범’이었던 거다. 자기들말로는 호족(虎族)이라고 부른댔나. 어쩐지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은 것이 제법 귀한 종족인 듯 싶기는 했다. 그건 호율의 눈동자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낮이라서 색이 밝은 갈색에 가깝다지만, 달빛 아래 드러난 눈동자는 차라리 태양이라 부를 만큼 눈이 부셨다. 어떤 티 한 점도 섞이지 않은 찬란한 황금색 눈동자는 호율의 밝은 갈빛 머리칼에, 또 그 위용 넘치던 범의 모습에도 놀랍도록 잘 어울렸었다. 여기까지 작은 고양이를 데려오게 만들었던 그 예쁜 눈동자는 나이를 먹어도, 느닷없이 사람이 되고 범이 되어도 변함이 없었다. 그 태양 같은 눈동자는.

그 눈에 반해서 석 달을 키웠다. 어둠 속에서 저를 빤히 올려보는 눈동자에 흠뻑 홀려서 효경은 작은 아기 고양이였던 호율을 데리고 왔었다. 고양이를 키워보기는커녕 외려 싫어하고 무서워했던 자신이 석달이나 정성을 쏟아내며 기를 줄은 효경 스스로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렇게 길러낸 고양이가 갑자기 사람이 되어 자기 식탁에 앉아 있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하지만 이상했다. 호족이라는 말의 뉘앙스를 들어도, 풍기는 분위기를 봐도 호율은 단순한 호랑이도 아니고 예사로운 존재는 분명히 아니었다. 이 정도쯤 되는 녀석이 대체 왜 그 야밤에 이런 골목길을 헤매고 있었던 걸까. 생각을 짚어 보던 효경은 아까 호율이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상기해냈다. 분명 호족들은 모두 한반도 본토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북쪽으로 밀려났다면 백두산일 거고, 그렇다면 아까 호율이 얼핏 말하던 ‘천지’는 백두산 천지를 일컫는 것일 테다. 실제로도 현재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서식한다고 알려진 곳은 백두산뿐이었다. 어디에선 민족의 정기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도 했고, 무엇보다 단군이 처음 하늘을 열고 나라를 세운 곳도 백두산이었다. 그곳에 사는 호랑이라고 한다면 분명 시베리아 호랑이, 즉 아무르 호랑이를 일컫는 말일 테고. 효경이 여기까지 아는 것은 순전히 이찬 때문이었다. 그래도 영화학도라고 스스로 시나리오를 만지기도 하는 이찬은 얕고 넓은 지식을 자랑하고 있었고, 이 이야기도 아마 이찬이 들려준 수많은 지식 중 하나였을 것이다. 요새 천지가 폭발한다 어쩐다고 말이 많다잖냐, 하면서 시작했던 이야기였던가. 아니면 그냥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툭 튀어나왔던가.

아, 왜 또 이찬 새끼 생각이야. 반사적으로 떠오른 생각에 효경은 얕게 머리를 털었다. 중요한 건 이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었느냐가 아니다. 왜 거기가 아니라 여기에 이 녀석이 있느냐는 거지. 백두산과 서울은 멀어도 너무 멀다.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너무 먼 백두산에서 살았던 이 녀석은 무슨 연유로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여기는 백두산이나 호랑이와는 아무 관계도 없었다. 민족의 정기라는 소리도 우습고 고작해야 길 잃은 들고양이나 술에 취한 20대 청춘들이 고성방가나 신나게 쏟아주는, 그저 동네 산일 뿐인데.

호율은 왜 여기에 있었던 걸까. 효경은 그게 궁금했다.

“그런데 왜 넌 여기에 있어?”

“뭐가요?”

“그러니까 어… 왜 사는 동네가 아니라 여기까지 흘러 들어오게 됐냐고.”


묻는 말투가 제법 조심스러웠다.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범이고 호족이라는 저 특이한 설정과 스탯답게 이 근처를 헤매는 데에도 분명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효경은 지끈 두통을 느꼈다. 하루 아침만에 일상이 달라져도 이렇게 달라지다니. 어제까지 효경의 고민은 오로지 해이찬과 밥 많이 먹는 고양이 뿐이었는데 스케일이 커져도 이렇게나 커져버리다니. 이건 꼭 그런 기분이었다. 시간을 죽이겠다고 아무 영화나 대충 끊어 들어갔는데 초특급 대형 블록버스터 한 편을 징하게 때리고 온 그런 거. 자리 잡고 앉았더니 시작부터 눈 한 번 떼기도 힘들 정도로 몰아붙이는 그런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 꼭 나비효과처럼.

정작 호율 본인은 덤덤했다. 포크를 입으로 쭈욱 한 번 빨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역시나 참치의 양이 아쉬운 모양이었다.


“뭐, 별 이유 없어요. 백두산에서는 지내기 어렵게 됐거든요.”

“왜?”

“누가 날 죽이려고 해서.”


그 말에 효경은 딸꾹질을 할 뻔했다. 별 이유가 없다니, 별 이유가 너무 많은데.


“죽이다니 그건 별 이유가 아닌 게 아니잖아.”

“별 이유가 아니긴 해요. 우리 사는 세계에서는 별로 보기 드문 얘기가 아니거든요. 좀 복잡하게 꼬인 문제도 있고, 언젠가 이렇게 되었을 일이기도 했고.”

“……”

“내가 죽어야지만 행복한 사람이 있어서.”


대답하는 호율의 어조만큼 표정도 덤덤했다. 오히려 놀란 건 효경 쪽이었다. 죽인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은 효경도 쉽게 눈치 챘다. 그런데도 호율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이런 일이 당연한 듯 대꾸하는 얼굴은 마치 잘 잤냐고 안부라도 묻는 것 같았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얼굴에 당황스러운 건 오히려 효경이었다. 혀끝이 마르는 걸 느끼면서도 효경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어떤 말도 쉽지 않고 조심스러웠다. 뭐라고 한 마디 건네주고는 싶은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석 달을 키운 정이 있다고 힘내라고 한 마디 해야 할 듯 싶은데.

효경은 이런 상황에 유독 약했다. 할말은 다 하는 성격이라지만 이런 말엔 유난히 예민했고 겁이 많아졌다. 불편한 상황, 아픈 상황, 누군가 울거나 힘들어하거나 괴로운 상황. 해이찬이 있었으면 금세 말이 사라진 효경을 눈치 채고 한 소리라도 했을지 모르겠다. 지효경씨, 또 안 해도 될 걱정 하고 있지. 그러면서 어깨동무라도 하거나 장난이라도 걸었겠지. 하지만 수가 없잖아, 난 진짜 이런 마이너스 에너지엔 익숙하지가 않은데. 누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말의 무게조차 가늠이 되질 않았다. 할말도 찾지 못하고 그저 입술만 짓씹는 게 고작이었다. 그 모습에 호율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호율이 웃었다. 눈꼬리를 접으며 짓는 웃음이 참 해사했다. 그마저도 봄날 햇살 같았다.


“걱정해주는 거예요? 나 죽을까봐?”

“누가 널 걱정했…”

“기쁘다.”

“……”

“나, 처음이에요. 이렇게 누구한테 걱정 받아본 거.”


뭐, 그전엔 걱정 받을 일이 별로 없긴 했지만. 짧게 뱉으며 호율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는 다시 효경을 향해 웃어 보였다. 빈 캔이 호경의 기다란 손가락 끝에 걸려 식탁 위를 빙그르르 돌았다. 한 바퀴를 다 돌기도 전에 호율은 한 손으로 가볍게 캔을 움켜쥐었다. 손 안에 놓인 캔이 얕게 구겨졌다. 마치 어떤 결의처럼.


“괜찮아요. 죽을 맘이 없거든요, 내가.”

“……”

“이 손으로 ‘하늘’을 열기 전까지는.”


‘숨’을 찾고 ‘생명’을 품을 때까지는.

덧붙은 말은 조금 작았다. 단번에 알아듣지 못한 효경이 뭐? 하고 재차 되물었다. 호율은 대답 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마주 본 눈동자가 창을 타고 떨어진 햇살에 반짝반짝 빛을 냈다. 그 눈이 참 해님 같다고 효경은 생각했다. 어린 날에 꾸었던 아득한 꿈처럼, 오랜 기억처럼. 할머니의 동화처럼.

빛나는 하늘처럼.




* * *


‘남자’가 나타났을 때부터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2호선, 그중에서도 이용객이 전국에서 가장 많다는 신도림 역이었다. 누군가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건만 사람들은 오며가며, 바쁜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모두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여자친구를 달래고 있던 젊은 남자도, 서울풍물시장에 수육을 먹으러 간다고 신설동행 1호선을 갈아타려던 어르신도, 킬힐을 또각 거리면서 종종 걸음을 놓고 있던 두 아가씨도 모두 한 곳에서 멈칫 거렸다. 그들이 보고 있던 것은 ‘남자’였다. 문제의 ‘남자’는 신도림 역의 복잡한 통로를 그려놓은 안내 표지판을 들여 보고 있었다.


“…흐음, 도무지 모르겠군.”


평범한 셔츠에 청바지, 요즘 최고 유행이라는 N사의 스니커를 신은 남자는 체구부터 늘씬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포니테일의 갈색 머리는 헤비메탈 밴드의 메인 기타리스트를 연상시켰지만 관리라도 잘 받는 건지 결이 지나치게 좋았다. 나이를 따지자면 20대 중반에서 후반 정도 되었을까. 그 정도의 남자는 이처럼 사람 많은 신도림에서 흔히 보이지는 않지만 아예 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시선을 집중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남자의 얼굴 때문이었다. 하나로 꽉 묶어둔 기다란 밝은 갈색 머리칼이 전혀 우습지 않은 것도,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은 돌아보게 되는 것도 다 그 탓이었다. 마치 깎아놓고 빚어놓은 듯한 얼굴은 잘 생겼다기보다는 아름답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얼굴이었던가. 때문에 종종 걸음을 놓던 아가씨 둘은 넋을 빼고 보다 기어이 힐을 삐끗거렸다. 어떤 아이돌도, 어떤 배우도 저와 같은 얼굴은 여태 유래한 바도 없고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가 신도림이 아니라 홍대나 강남이었으면 남자의 청바지 뒷주머니에 몰래 꽂아 넣은 기획사의 명함이 수북했을 법 했다. 하지만 정작 남자는 어디에도 관심이 없었다. 제게 어떤 시선이 꽂히고 있는지 아예 모르는 듯 남자는 그저 안내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길을 잃은 듯 했다.

서울이란 곳은 어찌 올 때마다 이리 휙휙 바뀌누. 남자는 말과 함께 짧게 혀를 찼다. 그러다 결국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주변을 휘이 둘러보기 시작했다. 막 하이힐을 삐끗했던 아가씨 둘이 남자의 시선에 걸렸다. 눈이 마주치자 여자들은 얼었고, 남자는 아! 하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 그리고는 종종걸음으로 아가씨들에게 다가왔다. 해사하게 웃는 얼굴에 여자들은 잠시 숨이 멎을 듯한 현기증을 느꼈다. 가까이에서 본 얼굴은 더더욱 현실감이 없었다. 렌즈라도 낀 모양인지 자신들을 향해 웃는 눈동자는 해사한 황금색이었다. 그마저도 남자의 이국적이고도 준수한 외모에 완벽히도 어울렸다.

하지만 남자가 입을 열었을 때 여자들은 다른 의미에서 아득한 기분을 느꼈다. 말투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 고운 처자들. 미안한데 내 말 좀 묻겠네.”


이와 같은 비주얼로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 말투였다. 사극에서 막바로 꺼낸듯한 예스러운 말투에 여자들은 잠시 위화감을 느꼈다. 그러나 남자의 외모는 그 모든 위화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놀라운 재주가 있었다. 그마저도 어울렸다. 청바지나 티셔츠 차림이 아니라 갓을 쓰고 도포를 입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래서 이와 같은 말이 존재한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


“내 서울 지리를 잘 몰라 말인데, 홍대 입구를 가려면 어느 통로로 걸음 해야 하는가. 통 복잡해서 말일세.”

“예, 예에? 호, 홍대입구라면 저기 보이시는 길을 따라서 쭈욱…”

“오, 저곳인가. 고맙네! 처자들 외모만큼 맘씨들이 곱구만.”


암만 봐도 외모로 보이는 나잇대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를 늘어놓고 남자는 바쁜 걸음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인파 속으로 섞여 유유히 걸어가는동안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지치지 않고 따라갔다.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그저 제 갈 길만 바삐 걸었다. 남자가 아득히 사라지고 난 후에도 아가씨 둘은 선 자리에서 움직이지를 못했다. 그러다 한참만에 한 아가씨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세상에, 하고.


“진짜 잘 생겼다…”

“응…”


2010년 6월 26일 토요일 아침, 서울이었다.



(4편에서)





-

일단 쓰던 부분은 여기까지. 4편 이후는 10월부터 찬찬히 써보겠습니다 ^_ㅠ...


글을 씁니다. | 트위터 @ruka_tea

루카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댓글을 사용하지 않는 블로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