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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아, 야옹아 ~02

1차 창작 BL

할머니의 무릎이 좋았던 때가 있었다. 제법 세상에 호기심도 많고 제 생각을 또랑또랑 말할 줄도 알던 그때, 효경의 나이는 다섯 살이었다.


― 옛날 옛날엔 말이다, 이 나라 온 동네 골짜기마다 호랑이가 살았어.


맞벌이로 바빴던 아빠와 엄마를 대신해 어린 효경을 돌봐준 것은 할머니였다. 사법 고시 중에 급하게 결혼한 아빠와 엄마에게 효경은 보배였지만 동시에 벅찬 현실이기도 했다. 아빠는 공부를 위해, 대학 병원의 간호사였던 엄마는 그런 아빠의 뒷바라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효경을 잠시 할머니 댁에 보냈다. 할머니의 집은 낙동강 어딘가의 깊고 깊은 산 속에 있었다. 차를 타고도 한참 굽이길을 따라 올라가야만 겨우 동네가 보일 정도로 깊은 산골이었다. 산을 타고 오르면 낙동강 줄기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그곳에서 효경은 딱 1년을 보냈다. 아침이면 강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공기를 뽀얗게 적시고, 밤이면 풀벌레와 소쩍새가 말갛게도 울어주었다. 사시사철 참외며 수박이며 감과 사과나무가 언제나 풍성했던 동네는 집집마다 심어진 과실만큼 인심도 좋았다. 나중에 나이를 좀 더 먹고 난 후에야 효경은 그 지역의 이름이 예천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엔 그저 강마을이라고 불렀다. 할머니가 살고 있는 강마을,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강마을.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림 같은 풍경이 눈에 선했다. 참으로 꿈같은 마을이었다.

효경은 강마을만큼, 또 할머니의 책상에 늘 올려져 있던 유리병 속의 작은 사탕만큼 할머니가 좋았다. 할머니에게선 언제나 따뜻한 향기가 났다. 맡고 있으면 괜히 가슴께가 따뜻해지는 그 향기가 좋아서 효경은 작은 머리를 할머니의 무릎 위에 톡 얹어놓곤 찐 밤이나 옥수수 같은 것들을 오물거리고는 했었다. 할머니는 무르팍을 베고 누운 손자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며 밤이 늦도록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줬다. 할머니의 한옥집 대청은 여름날 선풍기가 없어도 좋을만큼 시원했고, 할머니의 이야기는 TV보다 재미있었다. 오랫동안 동네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었던 할머니는 참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효경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호랑이였다. 이 나라 골짜기 굽이굽이마다 살았다던, 바로 그 호랑이의 이야기.


― 할매, 호랑이 대따 커?

― 응, 엄청 크지.

― 호랑이 얼마나 커?

― 우리 효경이 한 입에 꿀꺽! 할 정도로 크지.

― 그럼 호랑이 나뻐? 나쁜 놈이야?

― 말 안 듣는 아이한테는 나쁜 호랑이가 되지. 하지만 우리 효경이는 할매 말을 잘 들으니까, 착한 호랑이.


그땐 그게 마냥 좋았다. 할머니의 무릎, 세월이 켜켜이 내려앉은 할머니의 주름진 손 같은 것들이 효경은 그저 좋았었다. 효경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머리를 살포시 얹어놓고 할머니의 이야기에 웃다, 울었다, 겁을 먹거나, 혹은 묻거나 했다. 하나 밖에 없는 손자를 참 예뻐했던 할머니는 효경에게 밤마다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효경은 재미난 이야기보따리만큼이나 할머니를 좋아했다. 그땐 그랬었다.


― 옛날엔 이 골짜기에도 커다란 호랑이가 살았었단다. 사람들은 호랑이를 전부 ‘범’이라고 불렀지.

― 범?

― 그래, 범. 범은 호랑이랑 달라. 굉장히 예쁘지. 반짝반짝하고 말이다. 눈이 이렇게, 빛나거든.

― 빛? 빛나, 막? 호랑이 눈 빛나?

― 응. 꼭 해님처럼.

해니임? 효경이 늘이듯 받은 말에도 할머니는 웃었다. 그래, 해님. 해님이라고 했다. 하늘 위에 반짝반짝 빛나는 저기 저 햇님, 저 햇님을 닮았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그만큼 예쁜 눈동자를 가진 호랑이를 범이라고 한다고, 옛날에는 그 범이 큰 산골짜기마다 꼭 한 마리는 있었다고 할머니는 그랬었다. 한 번은 그 범을 만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때를 회상할 때면 할머니는 언제나 볼을 붉히며 수줍은 소녀의 얼굴이 되었다. 할머니는 수십 년 전의 그 일을 평생 품고 살았다. 예뻤다고 했다. 깊은 골짜기에서 마주쳤던 그 범의 눈동자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고.


― 할매, 나도 범 보고 싶어.

― 어쩌지, 효경아. 이제 여기에 범은 없단다.


말을 하며 할머니는 슬프게 웃었다. 호랑이도 없고 범도 없다고 했다. 이 나라에 쳐들어 왔던 저 섬나라의 나쁜 사람들이 전부 저 깊고 깊은 북쪽의 추운 나라로 범을 쫓아낸 탓이라고 했던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어린 손자는 왈칵 울음을 쏟아냈었다. 돌이켜보면 왜 그게 그렇게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효경은 왈칵 서러웠고, 슬펐다. 왜 만날 수가 없냐고, 그 해님처럼 반짝반짝하는 예쁜 범을 왜 난 볼 수 없느냐며 효경은 한참을 울었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음을 터뜨리는 손자를 끌어안으며 할머니는 연신 등을 쓸고 쓰다듬으며 도닥거렸다. 세월과 함께 지혜와 덕이 함께 쌓인 덕 많은 손이 애정을 담아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몇 번이고 작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할머니는 그랬다. 꿈처럼, 마치 오랜 추억처럼, 그 범을 처음 만났던 어린 소녀의 얼굴처럼.


― 우리 손주도 만날 날이 있을 거야. 그러니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렴, 우리 효경이.

― ……

― 그럼 언젠가는 네게도 찾아가겠지. 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그 예쁜 범이.


그때는 그게 좋았다. 마냥 좋았고 두근거렸다. 젖은 눈가를 훔치며 효경은 응! 하고 해맑게도 대답했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도 않아 효경은 심하게 앓아누웠다. 할머니의 책상 위에 놓여있던 유리병에서 주워 먹은 사탕 때문이었다.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효경은 의식 없이 며칠동안 사경을 헤맸다. 일 때문에 바빴던 아빠와 엄마가 급히 예천으로 달려왔다. 차에 올라 대구로 가는동안 효경은 자신을 안고 울던 엄마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대구의 큰 병원에서 며칠 내내 링거를 맞아도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꿈만 꿨다. 그러다 열흘 만에야 겨우 눈을 떴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하얀 병원의 천장, 그리고 자신을 보며 울고 있던 엄마와 코끝을 문지르던 아빠의 얼굴이었다. 엄마는 눈을 뜬 효경을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다. 그때는 엄마가 왜 우는지를 몰랐다. 효경은 그때 모르는 게 많았다. 범을 몰랐고 자신이 먹은 사탕이 무엇인지, 자신이 열흘동안 얼마나 아팠었는지에 대해서도 몰랐었다. 몰랐기 때문에 깨닫지 못했다.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손자가 아프면 언제나 그 곁에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할머니가 이제는 곁에 없다는 사실을.

그날부터 효경은 몇 년 간 말문을 닫았다. 무언가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벅찼던 그때, 다섯 살이었다.









어지럽다고 생각했다.


“……”


효경은 꼼짝 없이 침대 위에 누운 채로 그런 생각들을 집어 삼켰다. 답답해. 그리고 어지럽다. 어지러운데 눈 하나 꿈쩍 할 수가 없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그게 정말 이상했다. 눈꺼풀을 감지 못하게 누가 잡아 당기고 있다거나, 장난친다고 테이프라도 붙여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시간이, 몸의 감각이 그대로 멈춘 느낌이었다. 누가 일시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것 같애. 깨어있는 의식 한 편으로 효경은 조금 뻘한 생각들을 흩어 놓았다. 눈뿐만이 아니었다. 눈은 물론이고 손가락, 발가락 끝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자유로운 건 오직 입술과 성대뿐이었다.

그래, 그나마 숨이라도 쉬어지는 게 어디야. 생각하며 효경은 제 눈과 바로 딱 붙어 있던 눈동자를 다시 뚫어져라 들여다봤다. 황금색, 그것도 정말 하늘에서나 빛남직한 태양 같은 눈동자였다. 그 눈에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꼭 무슨 마술에라도 걸린 듯 했다. 때문인지 현실감은 점점 더 멀어지고 흐려졌다. 뭐지, 진짜 꿈인 거 아닐까, 이거. 하지만 꿈치고는 너무 리얼한데. 무엇보다 지금 이렇게 열려있는 눈이 너무 아팠다. 움직이지도 못한 채 멈춰있는 눈꺼풀에 효경은 이제 슬슬 짜증이 나려고 했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삼키지도 참지도 않고, 효경은 유일하게 자유롭던 입술을 느릿느릿 열었다. 야옹아, 하고 불렀더니 황금색 눈이 와작 구겨졌다. 얼굴 한 번 참으로 솔직했다.


“내가 야옹이 아니라고 했죠. 진짜 미치겠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이름 알려줬잖아요. 야옹이라고 하지 말라니까.”


별 걸로 다 성질이다. 야옹이건 나비건 그냥 고양이건 키티짱이건 그딴 게 뭐가 중요한데, 입에 붙은 걸 어쩌라고. 다다닥 쏴주고 싶은 맘을 애써 꾸욱 눌러가며 효경은 다시 호칭을 정정했다.


“어, 그럼 호율아.”

“왜요.”

“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지금.”


마빡에 십자 주름이라도 잡고 싶은데 쉽지가 않았다. 안면근육도 마비된 모양이었다. 표정을 드러낼 길이 없어서 효경은 괜히 제 입술만 꽉 깨물었다. 탁 쏘듯이 던진 말에 야옹이는, 아니 호율은 약간 의아한 듯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웃었다. 아무래도 효경의 반응이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커다란 황금색 눈을 나른하게 접어가며 호율이 글쎄요, 하고 말을 받았다.


“별로?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이게 어디에서 약을 팔아. 나 지금 눈이 안 감기거든, 망할 고양이 새끼야.”

“야옹이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니라고 했죠. 아, 그러고 있는 게 편한 거야? 그럼 밤새 그러고 계시든가.”

“와, 너 대박 신기하다. 고양이가 왜 이렇게 개소리를 잘 해? 이 씨발 놈아, 안 풀어?! 풀랬다, 어!? 풀어!”

“싫은데.”


암만 꽥꽥 소리를 지르면 뭐하겠는가. 씨알도 안 먹히는 것을. 저를 들여다보며 빙글빙글 웃고 있는 그 얼굴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뭐 이런 고양이가 다 있는가 싶었다. 아, 고양이가 아니라고 했지. 그럼 뭐지. 사람? 아니면 그냥 우리 집에 들어온 또라이? 얼굴 번번한 것들이 더 하다더니 이건 생긴 건 원빈 뺨을 후려치면서 정신병원에서라도 탈출한 모양이었다. 암만 짱구를 굴려도 사고가 그 이상 확장되질 않았다. 다른 결론이 전혀 생각나지 않아 효경은 애꿎은 제 머리를 비난했다. 내가 해이찬 새끼 때문에 한 1년 넋을 놨더니 정신줄도 같이 놨나보다 싶었다. 미치고 팔짝 뛰겠는데 미간 한 번 좁히기도 힘들어서 효경은 애꿎은 입술만 연거푸 잘근잘근 씹어댔다. 그게 마냥 우스운지 호율이 풉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러더니 효경을 바라보며 눈을 한 번 길게 감았다, 떴다. 꼭 고양이의 눈인사 같았다. 이런 걸 보면 고양이가 맞기는 한 모양인데. 멍한 생각을 하던 효경이 순간 어 했다. 마주친 황금색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나타났던 푸른색 안광 때문이었던가. 확인할 새도 없이 푸른 안광은 금세 사라졌다. 동시에 멈춰있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움직였다. 눈꺼풀, 또 손가락과 발가락까지도.


“뭐예요, 나랑 인사하는 거야?”


몸이 풀리자마자 눈부터 빠르게 끔벅거렸더니 한다는 소리가 저딴 식이었다. 흘러내린 기다란 갈색 머리카락을 대충 귀찮다는 듯 손으로 슥슥 넘겨가며 호율은 웃었다. 저렇게 말라서 손은 의외로 참 컸다. 아니, 긴 건가. 손등 위에 잡혀있는 힘줄마저 꼭 누가 빚어내고 만든 것만 같아 효경은 저도 모르게 잠깐 넋을 놨다. 그러다 순식간에 현실을 깨달았다. 자신을 냅다 떠밀고 후다닥 침대 헤드 쪽으로 도망치는 효경을 호율은 굳이 잡지 않았다. 헤드에 등을 딱 붙이고 버티고선 베개까지 끌어안는 모습에 또 웃음이 풉 터졌다. 내 꼴이 우습냐, 이 자식아. 생각하며 눈살을 구기던 효경은 일순 어 했다. 이렇게 되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저 몸, 말랐지만 잔근육이 보기 좋게 붙어 있던 저 몸, 보고 있는 이쪽의 기분이 아주 미묘해질 것만 같은 저 몸, 저토록 자연적이고 노골적인 저 벗은 몸.

아니, 그러니까 대체 왜 알몸이냐고, 왜! 차피 같은 남자고, 가리거나 부끄러울 건덕지가 전혀 없다지만 호율을 보고 있으려니 효경은 이상하게 귀가 홧홧했다. 여태 보아오던 그런 몸의 느낌이 아니어서 그런가. 창을 넘어온 가로등빛을 등에 업은 그 몸의 선은 베개를 끌어안고 침대 헤드에 붙어 있어서 감탄이 절로 터질 지경이었다. 말랐다. 그런데 그게 밉살스럽다거나 볼품없다는 느낌이 전혀 아니었다. 늘씬하다는 느낌과도 전혀 달랐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렇지 않을까. 맵시가 좋다거나 혹은 날렵하다거나. 피부 톤도 꼭 그랬다. 하얗다기보다 건강하고 밝다는 느낌을 주는 해사한 피부에 보기 좋게 선이 잡힌 잔근육에 손과 발은 또 묘하게 길고 컸다. 이따금씩 늘씬한 팔을 움직이거나 자세를 고칠 때마다 팔뚝 언저리에서 힘줄이 툭 돋아 오르기도 했다. 반반한데 사실 깎아놓은 미인에 가까운 얼굴처럼 몸도 꼭 그랬다. 선이 좋은 느낌.

무엇보다 효경의 시선을 잡아끌었던 것은 그 허리였다. 반쯤 돌려앉아 있던 단단한 허리 뒤편, 그러니까 척추 오른쪽 아래에 작은 문신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인위적으로 새긴 문신이라기보단 꼭 하나의 문양처럼 보였다. 한자였다. 저걸 뭐라고 읽더라. 한자엔 자신이 없었지만 어디에선가 본 기억이 나는 한자를 효경은 속으로 가만히 삼켜 넣었다. 하늘 호(昊). 그러고 보니 호율의 호가 하늘 호라고 아까 그랬었던가.

아니, 잠깐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뒤늦게 정신을 차린 효경이 얕게 고개를 털었다. 그리고는 다시 경계하듯 주춤거리며 호율을 노려보았다. 잠은 이미 물 건너갔고, 지금 중요한 건 저 호율이라는 이름의, 자신이 키우던 야옹이었음을 주장하는 저 기묘한 소년의 정체였다. 대체 뭐하는 새끼냐고.


“너, 대체 뭐야.”

“나요? 야옹이라면서. 니가 그랬잖아요.”

“고양이 아니라며. 너 뭐야, 뭐하는 놈인데 내 집에 있는 거야.”

“글쎄요, 나 뭐하는 놈이지? 뭐하는 놈처럼 보여요?”

“미친 놈.”

“에이, 그건 아니죠. 이렇게 잘 생긴 미친 놈 봤어요?”

“잘 생긴 미친 놈.”

“…아니라니까요.”

“너, 우리 야옹이 아니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호율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그 반응에 효경은 살짝 울컥 했다. 뭔데, 남은 진지하게 얘기했더니만 처웃기나 하고. 뭐가 그렇게 저 혼자 웃긴 건지 물개 박수까지 쳐대면서 난리도 아니었다.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멀쩡한 건 역시 저 얼굴 뿐인 듯 했다. 아, 미친놈아, 고만 웃어! 웃지 말라고! 괜히 울컥해선 빽 지른 소리에 그제야 호율이 웃음을 멈췄다. 미안, 진짜 미안해요. 입으로는 사과하면서 눈은 여전히 웃음기가 가실 줄을 몰랐다. 그리고는 눈물까지 매달린 눈꼬리를 쿡 찍어내면서 그랬다. 효경을 빤히 바라보는 황금색 눈동자는 여전히 참 예뻤다.


“이름, 지효경. 못 지, 숨결 효에 볕 경.”

“……?”

“2010 년 6월 현재 K대 09학번, 나이는 스물하나. 고향은 대구죠? 대구에선 나름 잘 나갔는데 서울 왔더니 여자는 안 꼬이고 인기는 바닥. 가장 자신 없는 일은 연애, 가장 미스테리한 일은 왜 동기들은 나에게 소개팅을 권하지 않을까.”

“야.”

“지하철 치한 경험 다수, 잡아서 손모가지 꺾어보면 다 남자. 그렇게 가녀리고 청순하고 예쁘장한 타입도 아닌데 왜 남자가 꼬이는지 도저히 이해불가. 최근 가장 짜증났던 일은 성년의 날에 남자한테 장미 받은 일이고.”

“야!”


얘기가 술술 풀린 것과 동시에 효경의 얼굴이 시뻘겋게 익었다. 이 새끼가 지 신변 공개 하라고 했더니 왜 남의 신상을 까고 앉았어. 이를 두고 세상은 흑역사라 일컫는다. 아니면 수치플. 스스로 회상하는 것도 괴로워죽겠는데 그걸 제 3자, 것도 저런 비주얼을 가진 존재의 목소리로 듣고 있으니 수치심이 치솟다 못해 창공을 돌파할 듯한 조짐이었다. 말이라도 좀 끊어보려고 소리를 빽 질러도 호율은 줄줄 잘도 읊었다. 아주 청산유수가 따로 없었다. 얼굴만큼 반반한 목소리가 듣기는 참 좋은데 내용이 몹시 거슬렸다. 그래도 멈추는 법이 없었다. 아주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저 고양이 새끼가 진짜.


“밴드부에서 기타는 치고 있는데 실력은 안 늘고, 주변엔 존잘이 너무 많고. 망할 야옹이 새끼 주워왔더니 이건 매일 참치랑 스팸 처먹고 덩치만 커지고. 원래 고양이 싫어했고, 무서웠고. 근데 얜 예뻐서 주워왔고. 제일 맘에 드는 건 눈이고.”

“야, 너 진짜 고만 안 해!?”

“보고 싶은 영화는 너무 많은데 보러 가줄 사람은 없고, 혼자 보러 가고 싶진 않고, 서럽고, 가끔 외롭고. 근데 같이 보러 가고 싶은 사람은 있고.”

“이게 진짜 고만하라고 했…”

“해이찬은 씨발, 개새끼고.”


소리를 지르다, 멎었다. 하필이면 튀어나온 게 그 이름이었다. 왜 이 대목에서 해이찬이 기어 나오는 건데. 스윙이라도 갈겨주려고 높게 쳐들었던 베개를 가만히 내려놓으며 효경은 습관처럼 제 입술을 얕게 짓이겼다. 그 대목에서 줄줄 제 할 말만 뱉어내던 호율이 효경을 슥 돌아봤다. 맞죠? 하고 덧붙이던 얼굴이 이번만큼은 웃지 않았다.


“뭐야. 이거 고양이가 아니고 순 스토커잖아.”

“니가 한 얘기잖아요, 지효경씨. 야옹아, 고민 있어, 이래가면서.”

“……”

“근데, 해이찬이 누군데요?”


있어, 그런 사람. 받아치는 효경의 목소리가 어딘지 맥이 탁 풀린 듯 했다. 더 이상 의심할 필요도 여지도 없었다. 해이찬 얘기까지 다 아는 건 이 우주에 야옹이 정도겠지. 그 야옹이가 사람이 되어 자신과 독대하는 날이 올 거라곤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했지만 솔직히 이런 얘기를 누구에게 하겠는가. 키우는 애완동물에게 고해성사를 하거나 넋두리를 하는 건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다. 물론 그 고양이랑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거나 그 고양이가 ‘인간’이 되어 있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었다. 별을 한 다섯 개는 달아줘야 할 법한 초특급 ‘대단한’ 일. 어쨌든간.

일단 그건 확실히 알겠다. 여전히 믿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야옹이’는 맞는 모양이다. 이건 클리어. 그렇다면 다음 단계의 의문이 시작된다. 야옹이는 야옹이인데 이 야옹이는 자기가 야옹이가 아니란다. 분명 고양이가 아니라고 했었다. 고양이가 아니면 대체 뭐지? 암만 기억을 되짚어 봐도 이전까지의 모습은 분명 고양이였다. 물론 귀나 꼬리, 무늬가 좀 신기하기는 했다. 어차피 고양이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나름 어떤 종의 고양이인지는 알고 싶어 효경은 열심히 검색했지만 비슷한 어떤 종류의 고양이도 보지 못했다. 귀의 모양, 꼬리의 생김, 무늬마저도 알고 있던 고양이와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 귀가 그랬다. 일반적으로 고양이의 귀는 뾰족하다. 하지만 얘는 동그랗고. 꼬리야 조금 뭉툭한 고양이들도 있으니 그렇다 쳐도, 얼굴형도 달랐다. 다른 고양이는 조금 눌리거나 길거나 해도 대체적으로 역삼각형의 얼굴을 하는데 귀처럼 얼굴형도 동그랬다. 무엇보다 일반적인 고양이에 비해 덩치가 커도 너무 컸다. 어떤 고양이는 삵만큼 크기도 한댔으니 그런 종인가보다, 하고 효경은 그저 가볍게 생각했었나. 자신이 모르는 종의 고양이가 있는가보다 했다. 자세히 알기엔 고양이를 싫어했었고, 따라서 무지했으니까. 그래도 당연히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덩치 좀 크고 귀가 동그란 고양이. 맞잖아. 아니라면 뭔데?

물어볼까. 생각하며 효경은 다시 한 번 호율을 불렀다. 또 습관처럼 야옹아, 소리가 먼저 튀어나갔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호율이 또 한 번 기가 막힌 듯 얼굴을 구겼다. 세 번을 들으니 저도 이번엔 제대로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입은 웃는데 눈이 안 웃어. 그 예쁜 황금색 눈동자로 웃음 한 번 짓지도 않고 호율은 눈썹을 좁혔다. 어이가 없다는 듯.


“답답해서 죽겠네, 진짜. 저기요, 지효경씨. 나한테 야옹이라고 부르면 이쪽에선 죽는다구요. 어딜 봐서 내가 고양인데. 어디 비교를 해도 그딴 고양이 새끼들한테 비교를 해요? 몇 달 동안 착각한 건 이해할 수 있어요. 근데, 이젠 아니라고 했잖아요. 이거 우리 아버지가 들었어봐. 당장 목이라도 물었지.”

“그니까 고양이가 아니면 뭐냐니까. 대답을 제대로 하든가, 그럼!”

“말 해줘도 별로 안 믿을 텐데.”

“너 그 모습부터가 충분히 믿기지 않거든.”


하긴, 그렇네요. 말을 받으며 호율이 웃었다. 씩 웃고는 느닷없이 효경을 향해 몸을 돌려 앉았다. 그 채로 호율은 손깍지를 껴고는 팔을 이쪽저쪽 유연하게 휘저었다. 뭘 하려고 몸까지 풀어?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몸을 푸는 모습에 효경은 그저 눈만 끔벅거렸다.


“뭐하는 건데?”

“몸 풀어요.”

“그니까 왜 몸을 풀…”

“마침 잘 됐네요. 나도 이제 막 성년이 된 참이라서 내 ‘지금’ 모습이 어떤지 확인을 못 했으니까.”


그 대목에서 효경이 눈을 크게 열었다. 성년이라니, 생일이야?!


“성년? 오늘이?”

“아마도요. 2010년 6월 25일… 맞죠? 맞을 거예요.”

“생일 기억하기는 쉽겠네.”


그렇죠? 해사하게 말을 받고 호율은 다시 허리를 똑바로 들어앉았다. 그 채로 흠흠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만 제 눈언저리를 슥슥 문지르고 비벼댔다. 뭔가 싶었다. 대체 그 확인이라는 건 또 뭐기에 저렇게 절차가 복잡해. 아, 그만 뜸들이고 할 거면 좀 하든가. 불만이라도 탁 뱉어주려던 그 찰나였던가.

호율이 효경을 돌아봤다. 눈이 마주쳤다. 마주친 시선 끝을 접어가며, 눈꼬리를 휘어트리며 호율은 예쁘게도 웃었다. 그리고 또 그거였다. 아까 얼핏 스쳤던 그, 푸른 안광. 황금색 눈에 푸르고 시린 빛이 반짝였다 싶었던가. 그때 뭔가가 변했다. 눈앞이, 고양이가.

아니, 호율이.


“……!!!!!!!!!!!!!!!!!”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오, 좋은데? 진짜 다 자랐어.」

“……”

「왜 그래요?」


왜 그러냐니, 왜 안 그러겠냐고 망할 고양이 새끼야.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는 꼭 동굴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단순한 에코나 메아리가 아니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세포를 쿵쾅쿵쾅 두드리며 헤집는 기분이었던가. 하지만 효경은 거기까지 예민하게 생각할 정신조차 없었다. 황금색 눈동자는 여전했다. 야옹이 시절에도, 갑자기 사람이 되었을 때에도, 또 ‘믿기지 않는’ 지금에도 눈동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건 그 눈뿐이었다. 그 눈과 마주쳤을 때 효경은 제 몸을 짓누르고 있던 커다란 발을 느꼈다. 하얗고 동그란, 그러나 뭉툭하고 커다란 발. 그 발을 따라 쭉 뻗어 있던 밝은 갈색의 털과 그 위를 유려하게 휘감고 있는 짙고 검은 줄무늬들은 마치 누군가 먹을 찍어 붓으로 그린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말랐던 주제에 느닷없이 너무나 커다랗게 변해버린 몸통과 그 진한 줄무늬들과 함께 효경은 가까스로 호율의 얼굴을 보았다. 꼭 타오르는 태양 같던 그 황금색 눈동자를 덮고 있는, 자신을 선명히 바라보고 있는 위용 넘치는 얼굴과 얼굴을 가득 덮은 황금색 털과 그 짙은 줄무늬들.

그때, 모든 의식이 꺼졌다. 꼭 스위치를 내리기라도 한 듯, 간단하게.


「?! 뭐야, 기절했어? 저기요, 저기요. 지효경씨?!」


툭 넘어가는 작은 고개를 호율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축 늘어진 하얀 몸을 호율이 앞발로 톡톡 쳤다. 상처가 남지 않게 발톱을 최대한 숨겨가며 앞발로 살살 건드려도 효경은 미동조차 없었다. 안 그래도 하얀 피부가 창백하게 질린 광경을 보며 호율이 난감한 듯 인상을 썼다. 얼굴 위에 선명하게 찍혀있던 산맥 같은 줄무늬들이 곤란한 듯 구겨졌다. 커다랗고 동그란, 때문에 장난스러운 눈매가 걱정스러운 듯 추욱 가라앉았다. 그 채로 호율은 기절한 효경에게 말을 걸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목소리였다.


「…동물원 가본 적 없어요? 아니, 왜 기절을… 저기요, 지효경씨. 지효경씨?!」


몇 번이고 이름을 불러도 효경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단잠에라도 빠진 사람처럼 달게 기절한 모습에 호율은 몇 번이고 흔들었다. 저기요, 하고 몇 번을 불러가면서.


「호랑이 처음 봐요?!」


보름달이 높던, 때문에 모든 게 다 꿈같던 여름,

2010년 6월 25일의 밤이었다.








* * *

새벽, 한남동, 온 세상이 고요했다. 탑처럼 높게 솟아오른 빌라는 유난히 더 숨을 죽였다. 보안 카드를 넣고 비밀번호를 몇 번이나 눌러야 겨우 로비를 지나칠 수 있는 빌라들이 즐비한 이곳에서 이런 시간에 깨어 있는 것은 오로지 CCTV 뿐이었다. 밤낮 없이 공기를 울리는 매미소리마저 이곳에선 들리지 않았다. 매미마저 울지 않는 밤, 이런 시간에 깨어 있는 거의 없었다. 모두가 내일을 위해 숨을 죽이고 우선은 한낮의 태양을 꿈꾸며 달게 잠들어 있을 테다. 꿈이란 공평한 것이어서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이 시간은 그런 시간이었다. 누구나 잠을 자고 누구나 꿈을 꾼다. 거지건 부자건, 혹은 나라의 왕이건 노예이건 간에.

이런 시간에도 꿈조차 꾸지 못하는 곳이 딱 한 곳 있었다. 이 탑 같은 빌라의 꼭대기는 아직도 잠들지 못했다.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은 집은 고요했다. 하지만 잠든 것은 아니었다.


“……”


넓게 트인 창 위로 달그림자가 비친다. 어릿어릿 흔들리는 달그림자는 어디 한 데 찌그러진 곳도 없는 완벽한 보름달이었다. 둥그렇게 떠오른 달을 올려보며 창 앞의 남자가 낮게 한숨을 삼켰다. 어디에도 불은 켜지 않았다. 불 하나 켜지 않은 어둠 속에서 남자는 넓은 책상 곁에 팔짱을 끼고 선 채로 계속 달을 보고 있던 참이었다. 넓은 창만큼 방은 아득하리만치 넓었다. 쓸모없는 것들이 일절 없는 그 공간은 차라리 외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창을 올려보는 남자의 뒷모습도 꼭 그와 같았다. 남자의 머리칼처럼 어둠은 휑하고 넓은 방을 먹먹히도 메워갔다. 빛이 있는 곳이라곤 오로지 창 앞뿐이었다. 마치 빛과 어둠의 경계인 듯 했다. 그 묘한 경계 위에서 남자는, 주은호는 그저 묵묵히 달을 올려보았다. 달이 참 크고 훤했다.

보름인가. 2010년의 6월, 보름이라면 분명히 25일이겠지. 생각하며 은호는 가만히 날짜를 헤아렸다. 그러다 등 뒤에서 조용히 문이 열렸다. 낯익은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정민이었다.


“도련님, 사모님입니다.”


별다른 대답도 대꾸도 없이 은호는 천천히 뒤로 돌았다. 낮과는 달리, 편한 가디건을 걸쳐 입은 정민이 들고 온 핸드폰을 은호에게 가만히 내밀어주었다. 핸드폰을 건네 받은 은호는 잠깐 짧게 목을 가다듬었다. 전화를 받으며 은호는 다시 창쪽으로 돌아섰다. 창 밖에 걸린 보름달 위로 얕은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낮은 목소리가 눅눅한 어둠을 고요히 흔들었다.


“네, 어머니.”

「율이, 찾았니?」


인사도 안부도 없다. 받기가 무섭게 용건부터 터져나왔다. 자신만큼 어머니는 쓸데없고 쓸모없는 일들을 싫어했다. 어떤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지지부진하게 끄집어내는 말장난, 쓸모없는 안부를 세상 무엇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단칼에 자르듯 던지는 본론이 퍽 익숙한 듯 은호는 덤덤히 말을 받았다.


“아직 못 찾았습니다.”

「너답지 않구나, 은호야. 그 작은 고양이 새끼 하나를 아직도 못 찾고 있다니.」

“죄송합니다.”

「내 그래서 진즉 찾아 죽이라고 전부터 일렀지 않니.」

“……”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말과 함께 은호가 다시 창 너머를 올려봤다. 눈에 걸린 것은 달이었다. 달, 6월의 보름달. 어디 하나 모나지도 비지도 않은 동그란 달이 뜨는 오늘은 6월 25일이다. 해마다 6월 25일은 늘 있어왔겠지만, 올해는 아니라는 것을 은호 또한 알고 있었다. 60번째로 뜨는 달이다. 60번째의 그날이었다. 날짜를 재차 가늠해보며 은호는 손을 펼쳐 창을 짚었다. 훤한 보름달이 구름결에 싸여 부옇게 흩어졌다.


「있지, 난 소름이 끼쳐. 어딘가에서 그 아이가 숨이 붙어 성호(成虎)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자다가도 비명이 터진단다. 그 황금색 눈동자를 생각하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 역겨워 견딜 수가 없어.」

“……”

「은호야. 나는 네가 그렇게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가 그깟 조그만 새끼 고양이 하나 어쩌지 못하는 아이는 아니잖니. 그렇지? 난 지금 기분이 굉장히 불쾌하구나, 내 사랑하는 아들.」

“…예, 어머니. 면목이 없습니다.”

「그래, 없어야지. 당연히 면목이 없어야지.」


전화기 너머에서 어머니가 낮게 웃었다. 실내가 조용한 탓에 웃음소리는 핸드폰을 넘어 방 안을 울리고 어둠을 흔들었다. 언제 들어도 우아한 목소리였다. 그 자신이 가진 교양과 기품의 깊이를 알 수 있을 웃음은 결코 경박하지 않다. 그 채로 우아하고 조심히 웃더니, 이내 멈췄다. 그와 함께 공기가 급변했다. 마치 누군가 스위치를 끄기라도 한 것처럼.


「당장 죽여. 그리고 그 새끼의 가죽을 벗겨와. 그걸 내 침대에 깔지 못하면 난 내일도 잠을 설칠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경솔하게 움직이지는 않았으면 하는구나. 천지에서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히 움직이렴. 장로들이 끼어들면 시끄러워.」

“예, 어머니.”


대답과 함께 전화는 뚝 끊어졌다. 어떤 인사도 없었다. 별 안부도 없이 끊어진 핸드폰을 은호는 다시 정민에게 건네주었다. 은호는 다시 등을 진 채 창 너머를 올려봤다. 구름이 느리게 흘러가며 둥그런 달을 먹어치웠다. 흐려지고 흩어지는 달빛에 은호는 얕게 미간을 좁혔다. 저런 달은 불길하다. 저렇게 어디 하나 모나지도 찌그러지지 않은, 저런 완전한 달은 언제나 불길함의 전조였다. 차오른 달은 언젠가 지기 마련이지. 더 차오를 날이 없는 저 달은 반드시 진다. 작아지고 작아지다 기어이 빛 한 줌 남기지 않고 저 하늘에서 사라지겠지. 완전한 달이란 그런 것이다. 사라지기 위해 채워진 달이다. 죽기 위해 태어난 어떤 아이처럼.

한실장님. 짧게 터진 말에 한 걸음 뒤에 있던 정민이 예, 하고 대답했다. 그 얼굴을 굳이 돌아보지 않은 채로 은호는 말을 이었다. 낮은 목소리가 달이 걸린 창 위에 옅게 흩어졌다. 구름이 점차 짙어지고 있었다.


“부탁한 ‘생명’은 찾았습니까.”

“공교롭게도 아직. ‘숨’의 행방을 쫓고 있는 중입니다만.”

“찾아요. 당장.”

“네, 도련님.”


이제 ‘그것’말고는 없어. 이제 ‘그것’ 외엔 없어. 중얼거리듯 말을 붙이고 은호는 다시 창을 올려봤다. 채워진 달, 완전한 달, 그리하여 지나치도록 시리고 선명한 달. 비웃듯이 쏟아지는 그 빛에 은호는 드물게 울컥 눈을 구겼다. 어떤 말을 뱉는 대신 은호는 손을 뻗어 창 위를 가만히 매만졌다. 제 손 안에 쥐일 듯이 멀리 있는 달을 가만가만 달래듯이 손끝으로 천천히 훑었다. 그러다 문득 손이 멈췄다. 으스러뜨리듯 주먹을 쥐었다. 완전하기에 불안한 달, 채워져 있기에 비워질 달, 그리하여 사라질 달 위에서.

가여운 것.

“넌 자라지 말했어야 했어.”


호율아.




(3편에서)



글을 씁니다. | 트위터 @ruka_t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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