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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아, 야옹아 ~14

1차 창작 BL





공기가 뜨겁다. 가늘게 흩어지는 호흡을 따라 숨은 달게 떨었다. 여름이라 그래. 밭은 숨을 헐떡이며 효경은 잠시 생각했다. 아니면, 술 때문에? 취기라면 이미 진작 깼다. 저를 날카롭게 뚫어보던 황금색 눈동자와 마주쳤던 순간부터 취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 효경을 잡고 흔들며 아득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그 감각이 전신을 온통 뜨겁게 흔들었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 효경이 제 몸을 짓누르고 있던 황금색 눈을 향해 느리게 눈을 끔벅거렸다. 그래, 저 눈 때문이야. 호율은 말이 없었다. 표정조차 삭제된 얼굴이었다. 그 눈이 효경은 처음으로 무섭다고 생각했다. 호율이 입꼬리 끝을 슥 밀며 웃었다. 그 웃음조차 인공적이었다. 긴 눈꼬리가 옅게 떨었다. 장난이 아냐. 마른 침이 꼴깍 넘어갔다. 눈을 질끈 감으며 효경은 생각했다. 정말로, 먹힐 거야. 그러다 순간 효경이 어깨를 덜컥 떨었다. 제 옷 속을 헤집어 오던 손길 탓이었다.


“읏, 그만, 호율아, 하지, 하지마, 그마ㄴ… 아읍,!”

“……”

“제발, 그만, 흡, 아흣, 아으,!”


말은 한 마디도 돌아오지 않았다. 묵묵히 셔츠 밑을 들쑤시면서 호율은 망설임도 없이 불쑥 가슴 언저리를 거칠게 문질렀다. 효경이 크게 허리를 꺾었다. 아팠다. 동시에 괴로웠다. 낯선 기분에 효경은 턱을 젖히면서 잘게 호흡을 떨었다. 짓뭉갠 입술 틈으로 욕이 섞인 말들이 엉망진창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만, 개새끼야, 제발, 그만…! 그래도 손끝은 멈추지 않았다. 거칠고 거침이 없었다. 효경은 애꿎은 제 입술만 꽉 깨물었다.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장난을 친답시고 코를 깨물거나 침대로 당겨 키스를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람 된 지 고작 사흘 된 고양이, 아니, 호랑이에게 깔려 있는 꼴이라니.

흐끕 숨을 삼키며 효경이 혀 끝으로 더듬듯이 호율을 불렀다. 제발, 놔줘. 울음결이 묻어나기 시작한 목소리는 차라리 애원에 가까웠다. 효경의 손목을 꽉 움켜 누르면서, 동시에 목덜미에 입술을 묻으며 호율이 낮게 웃었다. 그 웃음결에도 효경은 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어쩐지 서러웠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그만해. 놔. 이제 그만,… 아우, 좀 그만, 읏,!”

“……”

“제발, 그만하라… 아읍,!”

“……”

“호율아, 제발… 그만, 그… ”

“왜. 무서워?”

“……”

“무서우면 해이찬 이름이라도 불러요. 그거 잘 하잖아.”


씹듯이 뱉는 말이 낮았다. 꼭 짐승이 우는 것 같았다. 동시에 호율이 허리를 숙이며 효경의 티셔츠를 단숨에 목까지 끌어 올렸다. 호율이 제 가슴팍에 고개를 숙이던 것과 동시에 효경이 전기가 오른 것처럼 크게 펄쩍 뛰었다. 기분이 이상하다. 그보다는 아프고 괴로웠다. 다정함도 상냥함도 없었다. 그저 감각대로만 움직이는 촉각을 따라 아릿한 통증이 온몸을 예민하게 두드렸다. 명치까지 울릴 것 같은 통증에 효경이 눈썹을 힘껏 모았다. 잔뜩 젖은 호흡이 허공중에 잘게 헐떡였다. 아파, 아프다고, 아프단 말야, 이 개자식아. 하지만 호율은 손도, 입도 멈추지 않았다. 효경이 잘게 떨 때마다 호율은 체중을 실어 찍어누르곤 거침없이 손을 움직였다. 가슴께를 헤집던 손이 예고 없이 사타구니께로 미끄러지더니 예고 없이 꽉 힘을 주어 잡았다. 효경이 기어이 크게 떨었다. 긴 눈꼬리 끝이 옅게 젖기 시작했다. 하얀 뺨이 일순 불긋거렸다. 술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읍―! 아파, 아파, 아프다고, 이 나쁜… 새끼… 아으,!”

“왜요. 아파요? 그럼 불러, 해이찬.”

“나, 흐… 그런 거 아냐. 그런, 아냐, 아, 그, 제발, 아냐, 아…!”

“좋아하잖아. 좋아서 못 참겠다며. 미치겠다면서. 왜, 내가 대신 불러줘?”

“누… 흐읍, 그러, 아냐, 흐, 그만, 읏, 그만, 아흑,!”


입고 있던 진 채로 잡힌 손이 그악스럽게 움직였다. 멈출 줄도, 억제하는 법도 몰랐다. 잡아뜯을 듯이 움직이는 통각은 쾌감보단 차라리 아픔에 가까웠다. 효경은 제 입술을 깨무는 것도 잊고 연신 헐떡였다. 그러다 끝내 울음이 터졌다. 긴 눈꼬리 끝에 고여 있던 것들이 뺨을 타고 또르륵 굴러 떨어졌다. 그제야 호율이 우뚝 멈췄다. 맵시 좋게 밀려 있던 입꼬리가 스르륵 가라앉았다. 표정이 사라진 황금색 눈이 분한 듯 이를 악물었다. 웃음기가 사라진 목소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효경.


“뭔데 나한테 이래요. 내가 어떤 맘으로 이러는데, 내가 왜 이러는데. 니가 뭔데 이러는데, 나한테.”

“……”

“…모르잖아요. 내가 왜 이러는지.”


분했다. 더불어 슬펐다. 지금껏 호율은 어떤 것도 믿지 않았다. 아버지가 사라졌을 때부터 줄곧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도 사라지고, 어머니를 빼앗겼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들은 하루아침만에 허무할 정도로 쉽게 호율의 손아귀를 떠났다. 천지가 아닌 곳,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 곳. 우리는 더러웠고 매일 같이 사람들이 우는 소리와 비명이 가득했었다. 물과 음식은 늘 썩어 있었다. 군화발로 걷어차던 사내들의 비릿한 웃음을 볼 때마다 호율은 점점 마음이 굳었다. 믿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다 운명처럼 한 사람을 만났다. 숨이 멎을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리다 이젠 걸을 힘도 없었던 그 순간에 당신이 나타났다. 서울은 호율에게 너무 차가웠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발에 치이다 산을 보고 무작정 좁은 계단 위를 올랐을 때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냄새를 맡았었다. 단내, 절로 눈이 뜨일 정도로 달콤했던 냄새, 따뜻했던 냄새. 그 냄새를 따라 걷다 당신을 만났다. 악의 없이 손을 내밀면서 당신은 그렇게 말했었다. 형아랑 같이 갈래?

그 말 한 마디에 끌려 쫓아갔던 생활은 처음엔 별로 순탄치 않았었다. 당신은 고양이를 키운 적이 없다고 했다. 화장실을 만드는 법도 몰랐고, 어떤 먹이를 줘야할지도 몰랐었다. 그래도 한 번도 바깥으로 내치지 않았다. 꼬박 석 달을 그랬다. 웃고, 즐거워하고, 화를 내고, 울고. 그러다가도 슬그머니 배를 쓰다듬으며 잠들던 당신. 그때마다 어쩐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음이 온통 술렁거려서.


“잘 모르죠. 잘 때 얼마나 예쁜지, 웃으면 또 얼마나 예쁜지.”

“……”

“근데 맨날 울어. 웃는 얼굴이 제일 예쁜데.”


긴 갈색눈이 움찔 떨다, 이내 천천히 흔들렸다. 울지마요. 호율이 말을 삼키며 효경의 뺨을 슥 문질러 닦았다. 나는 당신이 우는 게 제일 싫어. 웃는 게 예쁜 사람인데, 이제는 그만 울었으면 좋겠는데. 근데 이번엔 내가 울렸어. 우는 얼굴이 싫다면서.

웃는 얼굴을 좋아했다.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턱 밑을 긁어주던 손을 좋아했다. 당신은 참 웃음이 많았다. 동시에 잘 울었다. 꼭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울 때마다 호율은 가슴이 아팠었다. 가슴에 다른 꿈이 자라기 시작했다.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그날’이 오기를 호율은 손꼽아 빌었다. 얼른 자라게 해달라고, 얼른 어른이 되게 해달라고 호율은 둥그런 달이 뜰 때마다 몇 번을 그렇게 기도 했다. 안아주고 싶었다.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살고 싶어졌다.

당신이 좋아서.


“줍지 말지 그랬어요, 나.”

“…호율아.”

“차라리 안 만났어야 했는데.”


호율이 프 웃었다. 황금색 눈 끝이 스르륵 가라앉았다. 효경이 잠깐 의아한 듯 호율을 보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이 사람은 언제나 눈치가 빨랐다. 알아요, 무슨 생각하는지. 걱정하는 거다. 이 고양이 자식을 한 대 쳐주고 싶은데, 참아주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자 어쩐지 눈가가 시큰거렸다. 왜 이렇게 나한테 맘이 약한 걸까, 이 사람은. 왜 날 자꾸 기대하게 만드는 걸까.

길게 놓여있던 눈꼬리가 슥 시선을 피했다. 호율이 아닌 옆쪽을 향해 끔벅거리는 속눈썹이 젖어 있었다. 예쁘다. 생각하면서 호율은 자꾸만 효경의 눈가를 슥슥 문질렀다. 부어오른 눈가에도 호율은 속이 상했다. 말없이 허리를 끌어안았던 건 아마도 미안해서 그랬을 것이다. 허리를 안으면서 호율은 천천히 누워있던 효경의 몸을 일으켰다. 제 허리를 안아 일으키던 팔에 효경은 잠깐 움찔 떨다 이내 순순해졌다. 그 채로 호율이 와락 효경을 끌어안았다. 그제야 효경이 픽 웃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맞을까봐 선수 치고 있지? 하여튼 진짜.”

“……”

“호율아. 나 숨 막히거든.”

“……”

“저기, 너 지금 너무 세게 끌어 안…”


몸을 빼내려고 꿈질거리기가 무섭게 안은 팔에 와락 힘이 들어왔다. 어깨까지 자란 밝은 갈빛 머리카락이 효경의 귓가와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효경이 흠칫 어깨를 좁히며 짧게 웃었다. 간지럽잖아, 바보야. 풀어달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만 좀 하고 이제 너도 떨어지라는 소리를 탁 뱉어주려다, 효경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고집스럽게 안아오던 팔 때문이었다. 꽉 힘을 실으며 호율은 우물거렸다. 미안해요.

효경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땐 제 품에 안겨 있는 이 소년 호랑이가 어쩐지 정말 자그마한 새끼 고양이처럼 느껴졌었다. 야옹이처럼.


“난 이제까지 뭔가를 원해본 적도 욕심낸 적도 없어요. 그게 가끔 형님한테는 좀 미안해요. 못 가진 게 없었거든요. 다 가졌기 때문에 가지려고 노력한 적도 없어요. 날 때부터 우리 아버지는 족장이었고 나는 순혈이었으니까. 모두 그랬어요. 호율님이 이 호족의 족장이 될 거다, 아비를 받들어 호족을 이끄는 태양이 되어줄 거다… 하늘을 여는 것도, 가지는 것도 너다… 모두 그랬어. 그래서 난 오히려 되게 약했던 건지도 몰라요. 잃어본 적이 없으니까. 처음 잃었을 땐 찾는 법도 몰랐거든요.”

“……”

“그랬는데, 처음으로 원하는 게 생긴 거야. 처음으로 가지고 싶은 게 생긴 거예요. 그게 내게 올 수 없다는 걸 아는데도 갖고 싶어서 미치겠는 거야. 석 달을 꼬박 그렇게 빌었어요, 나. 제발,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이 사람 안게 해달라고. 저 우는 얼굴, 한 번만 닦아줄 수 있게 해달라고.”

“……”

“알아요. 이런 얘기 재미 없죠.”


효경이 잠깐 눈을 크게 열다, 고개를 털었다. 괜찮아. 그보다는 몰랐던 얘기였다. 형이 있었구나. 물론 사연이 많겠다고는 막연히 짐작했었다. 호랑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것부터 족장의 아들이라는 스펙까지 뭐 하나 현실적이지 못한 이야기였으니 당연히 사정이 있을 거라곤 짐작했지만 본인에게 직접 듣는 진실은 언제나 다르다. 쉬운 얘기는 아니겠지. 너도 어쩌면 용기를 내고 있는 건지도 몰라. 효경은 그렇게 생각했다. 알아, 그런 마음. 나도 힘들었거든.

가슴에 묵혀둔 이야기는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낸다. 또 어떤 상처는 너무 오래 되어서 그게 상처인지조차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그 돌은 사라지지 않는다. 감추거나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심장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뛰지 않는 게 아닌 것처럼. 너에게도 참 많은 얘기가 있겠지. 내가 아는 건 일부일지도 몰라. 어쩌면 오늘 너를 여기까지 몰아붙인 데에도 이유가 있을 거야. 적어도 효경이 아는 호율은 그런 애가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는 무서웠지만.

정말로 무서웠었다. 그대로 목줄기를 잡아 뜯기는 것만 같았었다. 그보다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또 무슨 일을 할지 몰라서 효경은 덜컥 겁을 먹었었다.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었다. 그래도 호율은 끝까지는 하지 않았다. 끝까지 몰아붙이지는 못 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효경은 어쩐지 한숨이 났다. 이 바보야. 소리 내어 타박을 주는 대신 효경은 잠자코 저를 안은 호율의 등을 천천히 쓸었다. 웃음이 픽 샜다. 엄마 생각이 나서, 그보다는 할머니 생각이 나서. 그래도 그뿐이었다. 호율이 안고 있던 팔에 꽉 힘을 실으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미안해요, 정말로 미안해요. 효경이 작게 우물거렸다. 됐어, 뭘.


“겁주려고 그랬던 건 아니었는데, 울리려고 그랬던 것도 아니었는데… 미안해요.”

“됐어. 뭘 자꾸 사과해, 바보야.”

“어떡해야할지를 모르겠어서. 이 기분이 뭔지를 모르겠어서…”

“……”

“참아지지가 않아요. 참을 수가 없어요. 사실 뭘 못 참겠는지도 난 모르겠어요. 근데,”

“……”

“좋아요.”


갈색 눈이 순간 옅게 움찔했다. 가슴 안쪽에서 뭔가가 순간 쿵, 흔들렸다. 그 느낌이 낯설어서 효경은 뭐가 좋은 거냐고 되물을 타이밍조차 놓쳐 버렸다. 가슴 안쪽에서 작은 진동이 일었다. 그 느낌을 효경은 오래도록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효경은 호율의 말보다는 제 스스로에게 놀랐다. 왜, 대체 왜?


“좋아서, 못 참겠어요.”


왜 가슴이 뛰는 건데, 왜 눈물이 날 것 같은데.


“가지고 싶어서… 못 참겠어. 못 견디겠어.”


우물거리며 호율이 효경을 힘껏 끌어안았다. 그 힘에 떠밀리면서도 효경은 혼란스러웠다. 지금 이 기분을 모르겠다. 죄책감? 미안해서? 생각을 짚어보다 효경은 또 한 번 자신에게 흠칫했다. 아니, 미안하다면 대체 뭐가 미안한 건데, 나는? 장담컨대 효경은 언제나 눈치가 빨랐다. 그런데 혼란스럽다. 이번엔 모르겠다. 왜 가슴이 뛰는지, 왜 자꾸 눈물이 날 것처럼 눈가가 간질거리는지.

호율이 파묻었던 얼굴을 천천히 떼어내며 효경을 마주 봤다. 그제야 눈이 마주쳤다. 황금색 눈동자가 깊은 물처럼 일렁거렸다. 젖은 속눈썹을 보고 난 후에야 효경은 아 싶었다. 그렇구나. 그랬구나. 해이찬을 볼 때 이런 얼굴을 했었어, 난.

그렇게 생각하자 팔이 먼저 움직였다. 와락 끌어안았을 때 황금색 눈이 잠시 당황한 듯 흔들렸다. 왜. 호율이 물었다. 효경이 천천히 등을 쓸며 말했다. 그냥.


“우리가 너무 닮아서.”

“…그렇게는 말하지 마요.”

“왜.”

“난 해이찬이 아니니까.”

“바보야, 아닌 거 알거든.”

“나 때문에 아파할 수 있어요?”

“그건… 몰라.”

“내가 조금 전에 하던 걸 계속 하자고 하면… 그러니까 억지로 하면, 싫어할 거죠?”

“싫다기보다 아마 상처 받을 거야.”

“왜.”

“그냥… 몰라. 하지만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애.”


호율이 그제야 프 웃는 얼굴을 했다. 그런 게 어디에 있어요. 억울한 듯 장난처럼 웃다, 이내 또 말이 스르륵 사라졌다.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끌어안고 있었다. 조용했다. 효경은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너는 어떤 기분일까. 나는 해이찬을 좋아할 때 참 많이 아팠는데. 너도 아플까? 거기까진 모르겠다. 그래도 끌어안고 있던 팔은 참 뜨거웠다. 어떻게든 꽉 끌어 안고 있는 모양새가 꼭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하는 아이 같아서 웃음이 픽 났었던가. 귀엽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다. 해이찬이었으면 어땠을까. 효경은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나를 안고 있는 게 해이찬이면 어땠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 안쪽이 또 다시 울컥 저렸다. 아팠다. 불에 덴 듯 아픈 속을 들키기가 싫어서 효경은 저도 모르게 호율의 목을 꽉 끌었다. 맞붙은 심장이 쿵쿵 뛰었다. 너무 뛰었다. 너무 뛰어서 아팠다. 한참만에야 호율이 침묵을 밀어냈다. 여름날 미풍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가 효경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기. 시간은 벌써 자정을 지나고 있었다. 달이 하늘 꼭대기에 걸릴 그런 시간이었다.


“그럼 나 억지로 안할게요. 대신 부탁할게요. 나.”

“…응.”

“나랑 할래요?”

“……”

“짝짓기.”


효경이 픕 웃었다. 짝짓기가 뭐야, 짝짓기가. 와르르 쏟아지는 웃음에 호율이 잠깐 눈을 좁혔다. 놀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볼륨을 죽이는 것처럼 웃음소리가 천천히 사라졌다. 효경을 마주 보며 호율은 다시 말했다. 해요, 뭐든. 나랑.


“다른 사람 이름 불러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해요.”

“……”

“나도 처음이라 잘 못 해요. 사실 어떻게 하는 줄도 몰라요. 그래도 노력할게요. 그냥, 싫으면 안할게요. 울 거면 안해요, 나.”

“…왜.”

“지효경이 울면 속상하니까.”

“……”

“다른 사람 부르고 싶으면 불러요. 그게 마음이 편하면 그렇게 해요. 나는 진짜 괜찮아요. 그래도 울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억지로도 안 했으면 좋겠어요.”

“……”

“내가 노력할게요. 상처 내지 않을 게요. 약속해요. 그러니까… 할래요?”


웃음이 터질 뻔 했다. 그래도 웃지는 못 했다. 마지막 목소리가 메여있던 탓이었다. 그게 우스워서, 재밌어서, 그런데 마냥 웃지를 못 해서 효경은 짧게 눈을 흘기고 말했다. 바보. 황금색 눈동자가 잠시 일그러졌다. 또 놀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호율은 놀리지 말라고, 진지하다고 한 마디도 말하지 못 했다. 뭔가가 짧게 입술에 쪽, 닿았다 떨어졌다. 황금색 눈이 쏟아질 듯 크게 열렸다. 효경이 시선을 피하면서 우물거렸다. 또 그 말이었다. 이제는 입버릇처럼 붙어 버린 말이었다. 바보야.


“뭘 일일이 설득하고 있어? 하여튼 무드 잡을 줄도 모르고, 쯧쯧.”

“……”

“…아프면 당장 그만둘 거야.”


노란 눈이 둥그렇게 열리다 이내 픕 웃었다. 동시에 하얀 뺨을 움켜잡으며 힘껏 입술을 부딪쳤다. 효경이 반쯤 막힌 입새로 왁 짜증을 냈다. 아, 멍충아! 이 부딪쳤잖아! 그래도 호율은 다시 한 번 꿋꿋하게 입술을 겹쳐왔다. 이번엔 각도가 맞았다. 두 입술이 포개졌다. 효경의 몸이 바닥으로 천천히 기울었다. 완전히 다 눕기 전에 호율이 효경의 몸을 훌쩍 안아 올렸다. 느닷없이 중력을 잃은 효경이 엄마야! 소리를 지르며 호율의 목을 끌어안았다. 영락없는 공주님 안기였다. 황금색 눈동자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가요.


“하늘.”

“……”

“내가 하늘까지 보내줄게.”


이런 말은 대체 어디에서 배웠을까. 눈을 흘기다 효경은 이내 말았다.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기에 이 호랑이는 너무 서툴렀고, 동시에 급했다. 던지듯이 침대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또 한 번 물어뜯을 듯이 입술이 다가왔다. 키스는 좀 전보다 더 깊었다. 그래도 옷 안쪽을 깊게 헤집는 손길은 조금 전보다는 조심스러웠다. 끌어내리는 손길을 따라 못 이기는 척 허리를 들면서 효경은 잠깐 창 쪽을 돌아보았다. 창에는 달이 둥그렇게 걸려 있었다. 호율의 눈처럼 밝고 노란 달이었다.












* * *



끼익, 날카로운 소리가 노면 위를 긁었다.


“――――――――――――!!”


정민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노면 위를 한참 미끄러진 후에야 차는 겨우 멈춰섰다. 뒷좌석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은호가 스르륵 눈을 열었다. 주변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서울이었고, 은호의 집이 있는 주택가로 접어드는 입구 부근이었다. 하지만 정민이 차를 멈춘 것은 도착했기 때문도, 도로 위에 뭔가가 뛰어 들었던 탓도 아니었다. 핸들을 양손으로 꽉 움켜쥔 채로 정민은 말이 없었다. 은호가 눈썹을 좁혔다.


“무슨 일입니까.”

“……”

“한실장.”

“아. 아니. 아닙니다, 하하… 잠시 졸았나봅니다.”


정민이 넉살 좋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정민은 다시 악셀을 밟았다. 아무 것도 아닐 리가. 은호는 생각했다. 한정민은 이런 실수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정민이 이렇게 급하게 차를 세우는 일은 흔치 않았다. 도로를 둘러보아도 아무 것도 없었다. 뭔가가 급작스럽게 길 위로 튀어나온 것도 아니었고, 갑작스러운 장애물과 마주친 것도 아니었다. 이상하다. 하지만 은호는 딱히 더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목적지가 머지 않았다.

쉬고 싶다. 다시 창 너머에 머리를 기대면서 은호는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이런 갑작스러운 일정이야 자주 있었지만 오늘은 퍽 힘들었다. 얼른 들어가서 씻고 자고 싶다는 생각을 누군들 하지 않을까. 익숙한 골목길을 흘깃 바라보면서 은호는 다시 눈을 감았다. 도착할 때까지 조금 더 눈을 붙일 생각이었다. 정민이 룸미러 너머로 은호를 잠시 흘깃 거렸다. 차는 부드럽게 도로 위를 미끄러졌다. 핸들을 꺾으며 정민은 입술 끝을 질근 씹었다.

일부러 멈추지 않았다. 사고도 아니었다. 순간, 기운을 느꼈다. 오래도록 닫혀 있었던,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열려야만 하는 그 오랜 역사와 숙명의 섭리.


“…하늘.”


그 밤, 하늘이 열렸다. 섭리대로, 이치대로, 운명의 뜻대로.




(15편에서)








다른 때보다 이번 편은 그래도 좀 짧았네요, 허허.... ㅠㅠ 사실 수위문제로 고민이 많아서 그 단락들을 다 덜어내다보니ㅠㅠ

무튼 이제 1부 완결도 머지않았으니 힘내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 늘 감사합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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