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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아, 야옹아 ~09

1차 창작 BL






푸른빛 카브리올레가 고속도로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머리 위로 초록색 이정표가 차의 속도만큼 빠르게 나타났다 멀어졌다. 상주, 예천, 50km.


차창에 기대 잠시 선잠에 들었던 은호가 스르륵 눈을 떴다. 음악도, 라디오도 켜두지 않은 차는 조용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정민이 룸미러 너머로 그린 듯이 웃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사람 좋은 얼굴이 공손히 말을 걸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은호가 부스스 흩어진 머리칼을 빗어 넘기며 소리 없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도로는 한산했고 조용했다. 차창 너머로 풍경들이 영화의 필름처럼 빠르게 멀어졌다.



“달게 주무시는 것 같아 일부러 깨우지 않았습니다.”

“예천까진 얼마나 남았습니까.”

“30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다큐팀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오후부터 촬영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저희는 그때 합류하면 될 것 같습니다.”



더 주무십시오. 정민이 말했고, 은호가 답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은호는 다시 차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차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은호는 말수가 적었고, 정민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은호에게 먼저 나서서 말을 거는 일이 없었다. 처음 정민이 은호의 신변을 돌보게 된 때부터 줄곧 그래왔다. 이 침묵은 은호에게 낯선 것이 아니었다. 차안에서의 이 익숙한 침묵이 깨진 것은 그 녀석을 집에 데려다주던 날 뿐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날 재우지도 않았겠지. 어색하다고 짜증부터 부리지 않았을까. 


유난히 꼬리가 긴 갈색 눈과 하얀 얼굴을 생각하자 어쩐지 은호는 웃음이 났다. 차창 쪽을 향해 부드럽게 접히던 까만 눈을 정민이 룸 미러 너머로 언뜻 쳐다보았다. 한참 말없이 바라보다 정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드문 일이었다. 동시에 다소 맥락 없는 화제였다.



“숨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까.”



창을 향해 턱을 괴고 있던 은호가 슥 룸미러 쪽을 돌아보았다. 대답은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표정 없는 까만 눈이 잠깐 정민을 뚫어 보다 이내 담담히 대답했다. 건조하고 사무적인 투였다.



“호족의 환(丸)이 아닙니까. 생명을 주관하고 호족을 살게 하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를 묻는 게 아닙니다, 도련님.”



정민이 웃었다. 말투는 여전히 공손하고 상냥했다. 허나 은호는 그 말투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나타난 커브 길을 따라 핸들을 능숙하게 꺾으면서 정민이 다시 말을 이었다. 숨에 대한 이야기였다.



“숨이란 본래 호족과 인간에게만 효력을 발휘합니다. 유례는 반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호족의 초대 족장이었던 호령께서 죽어가던 인간을 환으로 살리셨고, 그것이 후에 ‘숨’으로 불리게 되었지요.”

“…알고 있습니다.”

“예, 도련님은 언제나 열심히 배우셨으니까요.”

“……”

“호령의 손에 의해 목숨을 건진 인간은 후에 백두산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 나라가 한반도로, 또 북방으로 뻗어나가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민족은 그의 후예겠지요. 인간들은 그가 나라를 세운 날을 두고 하늘이 열렸다고 하여 국경일로 기념한다고 합니다만… 그의 직계 후손들은 아직도 그를 받들며 제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예천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들의 종가가 있다고 하더군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으신 겁니까.”



은호가 눈썹을 좁혔다. 언짢은 얼굴이었다. 이 정도 역사는 은호 역시 알고 있었다. 세상에 난 후부터 장로들에게 귀에 진물이 고이도록 들은 이야기였다. 당신은 하늘의 자식이시며, 하늘과 인간을 중재하는 호족이십니다, 그런 식으로 운을 뗀 장로들은 은호에게 언제나 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했다. 예로부터 의술에 능했던 호족들이 만든 ‘환’ 중에서도 가장 진귀한 그것을 ‘숨’이라고 불렀다. 숨은 생명을 구하며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다. 하여 죽어가는 자가 숨을 먹으면 목숨을 건지게 되고, 아픔 없이 건강한 자가 숨을 먹으면 ‘생명’이 된다. 


모두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생명’ 중에는 드물게 호족의 유전 구조와 일치하는 자가 있다는 것, 그런 ‘생명’은 호족의 새끼를 잉태할 수 있다는 것. 그 ‘생명’이 자신의 새끼를 잉태하면 그가 자신의 ‘운명’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가 새끼를 낳게 되면 고조선 이후 닫혀 있던 ‘하늘’이 열린다는 것.


이런 것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한정민은 지금껏 한 번도 허튼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구태여 이런 지리한 역사 이야기를 하는 저의는 무엇일까. 은호가 눈을 좁히며 룸미러 너머를 말없이 뚫어 보았다. 다시 눈이 마주쳤다. 정민이 잠잠히 웃었다. 그리고 시선을 걷어내면서 정민은 말했다. 도련님.



“저는 가끔 그런 것이 궁금합니다. 숨이 과연, 하나일까요? 세상 모든 만물에는 다 짝이 있기 마련인데요.”

“…무슨 뜻입니까.”

“들숨이 있다면 날숨이 있는 것이 세상 이치지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하늘이 있어 땅이 있고, 해가 있어 달이 있는 것처럼. 저는 가끔 그게 궁금해져서요, 하하…”



정민이 허허롭게 웃었다. 은호의 눈이 다시 좁아졌다. 말의 저의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머리 위로 예천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다시 한 번 나타났다 사라졌다. 통로가 있는 오른쪽 차선으로 핸들을 꺾으면서 정민은 담담히 말했다.



“숨을 삼킨 자가 있다면 토한 자도 있기 마련이겠지요. 세상에 ‘이치’라는 게 있다면 말입니다.”

“……”

“주변을 너무 믿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도련님.”




시선을 걷어낸 정민이 크게 핸들을 꺾었다. 차가 굽이치는 커브를 따라 예천의 톨게이트에 접어들었다. 그 탓에 은호는 끝내 묻지 못했다. 빛이 무엇이고 그림자가 무엇인지, 하늘이 무엇이고 땅이 무언지. 들숨이 무엇이고 날숨이 무엇인지.


누가 숨을 삼켰는지, 그리고 누가

숨을 토했는지.




















빗방울이 투명한 우산을 타고 또르륵 굴러 떨어졌다. 우산 너머로 올려다 본 하늘은 낮았고 잔뜩 흐렸다. 아무래도 종일 이러려나. 올려다보던 시선을 걷어내면서 효경은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흐린 날은 기분도 덩달아 눅눅해진다. 예민하고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유도 없는 짜증은 아니었을 것이다. 기다란 눈꼬리가 울컥 일그러졌다. 제 어깨를 단단하게 잡고 있던 마른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팔의 주인 때문이었다.



"야."



효경이 낮은 목소리로 팔의 주인을 불렀다. 여전히 효경의 어깨를 끌어안은 채로 호율이 대답했다. 네, 하는 얼굴이 어쩐지 저 혼자 잔뜩 들떠 있었다. 구름이 물러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불쑥 얼굴부터 들이미는 햇님 같았다.



“이 팔 언제쯤 풀어줄 건데?”

“우산이 좁아서 이러잖아요. 나라고 좋아서 이러나?”



물었더니 노란 눈이 씩 쪼갰다. 저런 걸 잔망스럽다고 하는 거지. 웃을 때마다 둥그렇게 가늘어지는 노란 눈을 흘깃 째려보다, 효경은 이내 말았다. 흐린 날씨 덕에 흑백 같은 풍경 속에서 저 눈동자는 오늘따라 더욱 현실감이 없었다.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싸울 맘도 사라져서 효경은 이내 시선을 홱 걷어냈다. 어깨를 안은 팔에 좋다고 꽈악 힘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효경도 내버려뒀다. 북촌은 다른 때보다 한산했다. 아무래도 비가 오는 탓인 듯 싶었다. 한산한 거리를 휘 둘러보며 호율이 노란 눈을 반짝거렸다.



“근데 여기는 뭐하는 곳이에요? 기와집이 엄청 많네요.”

“관광지. 북촌 몰라?”

“몰라요. 북촌도 있으면 남촌도 있어요?”



효경이 잠깐 걸음을 멈칫 했다. 그건… 생각 안 해봤다. 남산한옥마을은 있는 것 같지만. 걸으면서도 호율은 연신 주변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쁘게 두리번거렸다. 집을 나설 적부터 아마 그랬을 것이다. 버스카드를 찍을 때부터 그건 뭐냐고 눈을 반짝거리더니 버스에선 내도록 창밖에서 눈을 떼질 못 했다. 저건 뭐냐, 이건 또 뭐냐고 내도록 묻는 통에 효경은 팔자에 없이 관광 가이드 노릇을 해야 했었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해이찬한테 거짓말은 하지 않은 꼴이 됐다. 


정말로 가이드를 하고 있다니. 물론 사촌동생은 아니지만.


비가 오는 평일이라 천만다행이지. 호율이 우산 바깥을 기웃거릴 때마다 효경은 그런 생각을 했다. 효경에게 육아나 가이드보다 더 짜증나는 건 사람 많을 때 시내를 걸어 다니는 일이었다. 암만 서울의 풍취와 고풍스러운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해도 효경은 애초에 이런 장소를 찾아가며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질 않았다. TV도 있고 핸드폰도 있는데 뭐하러 이런 데를 찾아다니느냐는 것이 효경의 지론이었고, 이 점을 해이찬은 특히 이해하지 못 했었다. 너는 안 그렇게 생겨서 감성이 메말랐다면서 갈구던 해이찬과 달리 드물게 주은호가 고개를 격렬히 끄덕이며 공감을 했었다. 그러고 보니. 말을 삼키며 효경은 생각에 빠질 때마다 으레 그렇듯이 잠깐 입술을 꾹 모았다. 이상하게 요즘 들어 주은호랑 얽히는 일이 참 많다. 어제도 그렇고. 어제 나는 대체 집에 어떻게 왔던 걸까.

물어볼까, 하다가 효경은 이내 관뒀다. 지금은 주은호보다도 옆에 매달린, 이 사람 탈을 쓴 호랑이가 더 먼저였다. 효경은 아직 호율이 왜 하고 많은 곳 중에 북촌에 오자고 했었는지 이유를 듣지 못 했다.



“근데 말야.”



여전히 효경의 어깨를 안은 채로 호율이 스르륵 효경을 돌아봤다. 노란 눈이 소리 없이 되물었다. 뭐가요? 효경이 잠깐 멈칫 했다, 이내 말았다. 시선이 오늘따라 너무 가까운 탓이었다. 주춤주춤 정면을 돌아보면서 효경이 다시 말했다. 여기, 북촌.



“북촌에 누가 있는데. 친척?”

“아뇨.”

“그럼.”

“글쎄요, 나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모르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고, 지금?”

“이름은 알아요. 그러니까… 누구더라?”



효경이 기함을 했다. 정말 똑똑한 것 같다가도 이 호랑이는 꼭 이렇게 한 번씩 저 혼자 도랑으로 또르륵 굴러 떨어진다. 여기까지 끌고 와 놓고서 누굴 만나러 가는지도 모른다니. 호율은 저 나름대로 심각한 얼굴이었다. 이름이 곧바로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눈썹을 좁혀가면서 한참동안 고민하던 노란 눈이 일순 아, 하고는 번쩍 열렸다. 노란 눈이 또 한 번 씩 웃었다. 생각난 모양이었다.



“회산. 회산이라고 그랬어요. 북촌에 가서 회산이라고 하면 다 알 거라고.”



효경이 우뚝 멈췄다. 호율을 돌아보는 기다란 눈매가 어쩐지 범상치 않았다. 기가 막힌 듯한 얼굴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대체 어떻게 그 이름을 모를 수 있느냐는 듯이 효경은 되물었다. 세상에, 회산이라니.



“회산? 회산 지승명!?”

“아, 맞다. 지승명! 그래, 그 이름이었어요.”

“너는 마트도 알고, 편의점도 알고, 스팸 털어먹을 줄도 알면서 회산을 몰라!?”

“회산이 뭔데요. 유명해요?”

“대통령보다 유명한 사람이거든?”



어떻게 모를 수가. 효경이 재차 경탄하다, 이내 부랴부랴 눈길을 털었다. 아니, 모를 수도 있지. 계속 천지에서만 살다 인도랑 필리핀에서 떠돌다가 이제 서울에 왔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효경의 말은 농담도 과장도 아니었다. 회산 지승명을 모르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무엇보다 회산이 주목을 받았던 것은 그 파란만장한 인생 탓이 컸다. 오랫동안 맘에 품었던 아낙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던 시골의 촌부는 625 동란이 발발하며 임신 중이던 아내와 헤어졌다고 했다. 곧 태어날 아들의 얼굴도, 생사도 모른 채 헤매다가 인민군이 던진 수류탄에 맞은 회산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대신 시력을 잃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서울역 앞과 미군 부대 앞을 전전하며 거지 생활을 하다 우연한 기회에 붓을 잡았고, 그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은 효경도 다큐멘터리와 갖은 인터뷰 기사 덕분에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효경의 부모님, 특히 아빠가 팬을 자처할 정도로 유독 회산 지승명을 좋아했다. 대구에 있는 효경의 본가에도, 프린트한 복제본이긴 하지만, 회산 지승명이 그린 호랑이가 크게 걸려 있었다. 아빠는 고흐의 해바라기나 클림트의 키스보다도 지승명의 호랑이가 더욱 아름답고 빼어나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눈 대신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가 이 시대의 진정한 천재이며 진짜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고 아빠는 즐겨 말했었다.


그런데 회산 지승명을 모른다니. 효경에게는 그야말로 안중근과 유관순을 모르는 것과 다름없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회산의 그림 한 장을 전시하기 위해 오래도록 강탈해 보관하고 있던 우리 문화재를 돌려줬다는 일화는 국사 교과서에도 실려 있을 정도다. 하기야, 호율이 그런 것들을 배웠을 리는 없겠지만. 모른다면 이런 정도다.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거나, 호랑이거나.



“살다 살다 회산 모르는 사람은 또 처음 보네. 야, 얼마나 유명한 화백인데.”

“알 게 뭐예요. 화백이면 뭔데요? 그림? 화가예요? 뭘 그렸는데요?”

“너도 보면 알걸? 백두의 호랑이, 산군, 범의 탄생…”



되짚어 보다 효경은 순간 어? 싶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호랑이. 회산 지승명은 호랑이를 즐겨 그렸다. 더불어 잘 그렸고, 거의 그것만 그렸었다. 동서양의 화법을 전부 아우르면서 그림의 대상은 늘 호랑이였다.

생각해보니 희한하다. 효경이 호율을 슥 돌아봤다. 마주친 노란 눈이 잠깐 의아한 얼굴을 했다. 효경이 말없이 입술을 모았다. 호율은 호랑이다. 그리고 그 호율이 자신의 뒤를 봐준다고 해서 만나러 간다는 사람이 회산 지승명이다. 


호랑이를 즐겨 그리는 범 화백, 회산 지승명.


이게 우연일까? 효경은 그 점이 궁금했다. 설마. 호랑이를 자주 그리는 화백이라는 건 호족과도 관계가 있는 건가? 아니라면, 호족? 효경의 머릿속이 단숨에 혼란스러워졌다. 호율이 씩 웃었다. 그제야 알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때에도 팔은 여전히 효경의 어깨에 감겨 있었다.



“정말 유명한 사람이었구나. 어쩐지 아버지가 그러더라구요. 북촌 어디엘 가도 이름만 대면 다 말해줄 거라고.”



아버지? 효경이 다시 호율을 돌아봤다. 그러고 보니 어제 마트에서도 줄곧 신경 쓰였었다. 어머니는 천지에 계신다면, 아버지는? 아버지는 어디에 계신 걸까. 분명 말 못할 사정이 있겠거니 싶어 묻었던 이름이 다시 또 비져 나오자 효경은 이번엔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얇은 입매가 몇 번을 망설이다 이윽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저기, 하자 호율이 응, 하며 말을 받았다.



“그냥 내가 어제부터 신경 쓰이고 궁금해서 묻는 건데.”

“? 뭔데요?”

“아버지는?”

“누구. 우리 아버지?”



효경이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쩐지 조심스러워보였다. 신경 써주는 거지. 호율이 눈 끝을 접으며 웃었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마음이 예쁠까. 생각을 삼키며 호율은 담담히 말을 받았다. 황금색 눈동자가 부드럽게 웃었다. 부러 더 그러는 것처럼.



“사라지셨어요. 20년 전에.”



긴 눈꼬리가 크게 열렸다. 사라지셨다고? 호율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가까운 사람과 잠시 일이 있어 어디엘 가시던 중에 사라지셨어요. 실종됐대요. 아직까지 소식도 모르구요 아, 근데 저기, 한반도에서 광주에 난리 났었던 때가 언제예요? 5.18? 광주 뭐라고 했던가, 그거.”

“광주? 광주민주화항쟁? 그거라면 1980년…”

“아, 그럼 맞네. 딱 20년이네요.”



대화의 흐름이 뭔가 이상했다. 얘는 대체 뭐하는 고양이기에, 아니, 호랑이기에 광주 민주화 항쟁 같은 걸 알고 있는 지에 대한 의문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버지 얘기를 하고 있는데 대체 왜 흐름이 이리로 오는 건데? 효경이 기가 찬 듯 물었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아, 내가 말 안 했나? 원래 호족에게 일이 생기면 한반도에도 큰일이 생기거든요. 좋은 일이면 좋은 일, 나쁜 일이면 나쁜 일.”

“…왜?”

“우리는 신령이니까.”



효경이 눈을 둥그렇게 열었다. 아무래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호율이 볼을 긁적거렸다. 그건… 하여튼 그래요, 그냥.



“뭐, 자세히 설명하려면 얘기가 길어지니까 그건 넘어가요. 그냥 그렇다고만 알면 돼요. 호족이 태어나거나 죽을 때, 혹은 호족의 신변에 큰 위협이나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한반도에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뭐 이런 정도? 내가 태어날 때에도 그랬구요.”

“네가 태어날 때는 왜.”

“전쟁 났었잖아요.”

“전쟁? 너 환갑이라며.”

“그러니까 맞잖아요. 올해가 6.25 60주년이라면서요? TV에서 그러던데.”

“……”

“뭐야. 내가 언제 사람 됐는지 까먹었어요?”



아니, 까먹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황당해서 그랬다. 아니, 당황했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랬다. 이 야옹이가 느닷없이 사람으로 변했던 때는 오늘로부터 사흘 전이고, 그날은 6월 25일이었다. 호율은 그날이 자신의 60번째 생일이라고 했다. 다만 호족들이 뭐하는 존재들인지 이해가 잘 가질 않았다. 대체 그 호랑이들은 뭐기에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고, 태어나고 죽거나 사라질 때마다 이 나라에 일이 생기는 걸까. 정말 신령 같은 거라도 되나? 

이럴 거면 진작 역사 공부 좀 더 열심히 할 걸. 머리가 온통 복잡했다. 호율이 잠깐 한숨을 쉬었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천천히 다시 걸으며 호율은 남은 말을 마저 이었다. 그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웠다. 노란 눈 끝에 걸린 웃음이 어쩐지 조금 썼다.



“그래서 다들 그러더라구요. 나는 저주 받았다고.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호족과 한민족의 경사인데, 내가 태어날 땐 전쟁이 일어났다고. 형제가 서로를 겨누고 죽이는, 그런 유례없는 전쟁이 벌어졌다고.”

“……”

“나는 나쁜 기운을 가진 아이래요. 나라를 망하게 할, 나라를 쪼개놓을 그런 아이라고.”



나 때문에 시작된 거야.


오래도록 호율은 그렇게 생각했다. 단군이 한반도에 나라라는 것을 세운 이후부터 단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유례 없는 전쟁이었다. 동생이 형을 죽이고, 형이 동생을 죽이는 것.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이 운명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내가 태어난 탓에 이 참극이 벌어진 것이라고, 자신을 반대하는 장로들은 늘 손가락질을 했다. 아버지가 사라진 후로, 또 인도와 필리핀의 좁은 우리에 갇혀 생활하던 동안에도 호율은 줄곧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차라리 세상에 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태어날’ 운명이 아니었다면,


아버지는 형의 목을 물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형’도 나를 미워하지 않았을 텐데.


효경이 조용히 호율을 올려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호율은 잠깐 마음이 아팠다. 이 사람은 왜 가끔 나를 보면서 이런 얼굴을 하는 걸까. 나는 괜찮은데 왜 이 사람이 나를 보면서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는 거지? 문득 그 뺨을 쓰다듬어 보고 싶었다. 그 눈가를 가만히 문질러 보고 싶었다. 자꾸 만지고 싶어서, 호율은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노란 눈이 다시 환히 웃었다. 일부러 그랬다. 당신이 또 속상할까봐, 또 며칠동안 괜한 것을 물었나 혼자 끙끙 속을 앓을까 싶어서.



“뭐, 내 얘기는 됐구요. 나도 이런데 아버지는 더 하겠죠. 족장인데 실종은 큰 사건이잖아.”



호율이 어깨를 으쓱했다. 화제는 다시 한 번 자연스럽게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제야 효경이 다시 얼굴을 풀었구나. 아, 그렇구나. 족장이셨구나. …족장. 족장이라니. 우물거리다 효경은 호율을 홱 돌아봤다. 갈색 눈이 크게 열렸다. 이번엔 정말로 놀란 얼굴이었다.



“족… 뭐, 족자아앙!?!!?”

“? 내가 말 안 했어요?”

“안 했거든?!”



헐, 대박. 효경이 솔직하게 감탄했다. 세상에, 인간만 엄친아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인생에 금수저는 주은호 하나뿐일 줄 알았는데. 외모에서 풍기는 아우라부터 심상치 않기는 했다. 그런데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설정이 다 있는데!? 갈색 눈이 솔직하게 찌그러졌다. 울컥 배신감이 들었다. 아버지가 호족의 족장이라니, 족장의 아들이라니.



“그럼 넌 뭔데. 호랑이 왕자님? 그런 거야?”

“일단은요? 그러게 내가 나 좀 귀한 핏줄이라고 했잖아요.”

“……”

“뭐, 나도 족장이 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무슨 소리야. 그 말이 효경은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족장 아들이면 당연히 족장 되는 거 아냐? 왕들은 그렇잖아. 되묻는 말에 호율이 어깨를 또 한 번 으쓱했다. 노란 눈이 쓰게 웃었다.



“백두산이 아니라 여기에 있잖아요, 나. 그게 증거지.”



내가 죽어야만 행복한 사람이 있으니까.


효경은 말이 없었다. 말없이 스르륵 떨어지는 눈길을 가만히 지켜보다, 호율은 가만히 효경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가요. 말하며, 호율은 효경과 함께 젖은 거리 위를 무심히 걸었다. 투명한 우산 위로 빗방울이 어지럽게 떨어졌다. 올려다 본 하늘은 여전히 낮고 눅눅했다. 그 하늘이 꼭 천지 안에서 올려다 본 것처럼 흐렸다. 어둠처럼.












* * *


세 번째 담배를 담벼락 앞에 비벼 끄며 이찬은 길게 기지개를 켰다. 저 앞에서 두 소년이 투명한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좁은 길을 걸어 오르고 있었다. 좁은 우산에서 어깨를 맞붙이고 걸어가던 소년들은 잠깐 걷다 말고 지나가던 행인에게 말을 걸었다. 길을 묻는가 싶더니 이내 꾸벅 행인에게 인사를 하고 둘은 오래지 않아 이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이찬이 짧게 헛웃었다. 둥그런 눈 끝이 옅게 일그러졌다.



“…지효경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어차피 알고 있지 않았더냐. 너는 저 아이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지 않니.”

“할배는 가끔 그럴 때 되게 미운 거 알아요? 다 알면서 물어볼 때.”



곁에 있던 남자가, 호연이 허허롭게 웃었다. 재미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 이찬은 잠깐 기가 찼다. 나도 나지만 이 사람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아, 보통 ‘사람’이 아니기는 했지, 참. 생각하면서 이찬은 무심히 물었다. 그래서.



“어때요? ‘얼굴’을 본 기분.”



누구라고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호연이 눈을 둥그렇게 접으며 말을 받았다. 제 아들과 꼭 같은 황금색 눈동자가 부드럽게 웃었다.



“제 엄마를 참 많이 닮았구나. 어릴 적엔 모두 다 나를 빼다 박았노라 했었거늘, 허허… 나는 그래도 다 컸을 적엔 제 엄마를 닮길 바랐었지.”

“아란님 진짜 엄청 미인이신가보다. 할배가 이런 소리를 다 하시네.”



호연이 답 대신 고요히 웃었다. 그 사이에 생략된 말들이 너무 많았다. 이미 두 소년이 사라져 버린 길에서 호연은 좀처럼 눈길을 돌리지 못 했다. 그 모습을 이찬이 잠깐 잠자코 지켜보다, 문득 웃음이 났다. 처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었다. 소리 없이 웃음기를 죽이면서 이찬은 다시 호연을 불렀다. 

할배. 호연이 고요히 이찬을 돌아봤다. ‘아들’에 대해서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마치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여기는 할배가 알아서 해요. 나는 그냥 근처에서 놀고 있을 테니까.”

“그래도 기왕 곁에 왔는데 얼굴을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

“사양할랍니다. 어차피 저녁에 또 만날 건데 자꾸 얼굴 봐서 뭐해요. 괜히 눈에 띄는 것도 안 좋다니까.”

“지금 피해간다 해도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다. 알아야만 하고, 알게 될 일이지. 그게 저 아이의 운명이고 또한 너의 운명이지 않느냐.”

“어, 그렇죠. 할배 ‘아들’의 운명처럼.”

“……”

“지금 이건 할배가 먼저 시작한 거예요.”



나는 일부러 말 안 하고 있었는데. 둥그런 눈이 개구지게 씨익 웃었다. 아가. 호연이 눈 끝을 가라앉히면서 재차 이찬을 불렀다. 처마 끝에 매달려 있던 빗방울이 이찬의 신발 위로 똑, 떨어졌다. 운동화는 이미 아까 전부터 젖고 있었다. 피한다고 피하고 있었는데도. 그렇게 생각하자 이찬은 어쩐지 픽 웃음이 났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잖아.



“언젠가 지효경도 알게 되겠죠. 어차피 걔는 알 수밖에 없어요. 그게 걔 운명이니까. 그럼 굳이 서두를 것도 없잖아요.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인데.”

“그건 그 아이를 걱정해서 그러는 거냐, 아니면…”

“어, 나 때문에 그래요. 내가 다치기 싫어서 그래.”

“……”

“…이기적이거든, 나는.”



그래서 모른다. 알아도 늘 모르는 척을 한다. 그걸 너는 모르겠지, 효경아. 우린 만나기 전부터 이런 사이였어. 그리고 아무리 나 혼자 백날 생각해봐야 결론은 아예 처음부터 하나 밖에 없었다. 지효경은 언젠가, 어차피 알게 되어 있다. 나의 존재, 그리고 내 ‘진짜’ 마음. 하지만 될 수 있으면 그 순간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영 모르는 채 지나갔으면 좋겠다. 영영 모른 척 지나가면 안 되는 걸까. 너도, 나도, 그리고 지금 네 곁에서 네 어깨를 안고 있는 그 호랑이도.


하지만 어차피 언젠가 ‘때’가 온다.

 ‘숨’을 품은 ‘생명’이 누군가의 ‘운명’이 되는 순간, ‘생명’이 ‘생명’을 낳는 순간, 네가 누군가의 ‘짝’이 되는 순간, 네가 누군가의 새끼를 잉태하게 되는 순간. 


그때야 너는 비로소 나를 알아차리겠지. 그게 이찬은 가끔 너무 슬펐다. ‘너’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그 어린 날부터.



“그러니까 나도 좀 이해해줘요, 할배. 할배만 원하는 게 있는 게 아냐. 나도 원하는 게 있어요. 욕심이란 게 있고. 할배가 뭐 때문에 그렇게 서두른지도 알아. 근데 내 마음이 그러기 싫다잖아요. 내가, 아직은 그러기 싫다잖아.”

“아가.”

“어차피 할배도 알잖아요.”

“……”

“…나는 안 되는 거.”



그걸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이런 정도다. 가급적 그 ‘순간’이 늦게 닥칠 수 있도록 미루는 것. 네가 누군가의 ‘운명’이 되지 않도록, 네가 평범한 삶을 살며 늙어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그걸 바라는 것 외에 나는 방법이 없다. 이게 너의 운명이고, 나의 운명인 한은.

그래서 우리는 안돼, 효경아. 내가 너의 ‘절반’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할배, 나는 허락 안해요. 그게 설사 당신 아들이어도. 나한텐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호연은 그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말없이 담담히 그저 웃고만 있는 얼굴에 이찬은 조금 미안해졌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나도 지금 엄청 유치하게 굴고 있는 거지. 생각하면서도 입을 다무는 건 가슴이 아픈 탓이었다. 심장이 저린 탓이었다. 가슴께를 습관처럼 슥 짓누르면서 이찬은 길게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접었던 우산을 펼치면서 처마 밑을 빠져 나왔다. 인사도 없이 훌쩍 걷기 시작한 이찬의 등을 호연이 불러세웠다. 마치 집안의 어른이 아끼는 아이를 걱정하는 듯한 투였다.



“아가, 어딜 가려고―”

“놀다 온다고 그랬잖아요. 근처에서 적당히 있을 테니까 할배 먼저 가 있어요. 일 끝나면 부르고.”

“하지만 이찬아.”



저 아이는 어쩌고. 등 뒤에서 떨어진 목소리에 이찬이 우뚝 멈춰 섰다. 호연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훌쩍 자란 청년이 뒤를 훌쩍 돌아보았다. 둥그런 눈을 장난스럽게 휘어뜨리며 이찬이 입매를 씩 밀어 올렸다. 그리고는 제 가슴팍을 쿡 찍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얘가 말해주니까.”



이찬의 가슴이 쿵, 뛰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느껴온 고동이었다. 가장 지키고 싶은, 가장 소중한, 더불어 가장 사랑하는

너의 고동.







(10편에서)









오늘은 다른 날보다 짤막짤막한데 어째 내용은 더 많은 듯한 기분 (ㅜ... 무튼 포스타입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ㅜ ㅜ


+ 야옹이 10편은 개인적인 일정과 분량 조절을 위해 수요일은 건너뛰고 3월 6일 일요일에 업로드 됩니다ㅜ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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